요즘 멋진 한 남자를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되었다. 모임이나 회의가 있어 전철을 타고 이동할 때, 그리고 하루의 지친 일과를 끝내고 누워 잠이 들기 전에 그를 잠깐 만난다. 한꺼번에 왕창 만나면 금세 그 좋아함이 바닥날 것 같아서 자주 조금씩 만나고 있다. 그가 누구냐고? 그의 이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그에게 반해 버렸다. 손바닥 1.5배 크기의 얇은 책인지라 마음먹으면 3~4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맛있는 과자를 숨겨두고 조금씩 아껴가며 먹는 어린 아이처럼 한 구절 한 구절을 씹어 음미하며 읽었다.

그는 책 첫머리에서 “어머니에게서는 경건과 타인에 대한 봉사, 나쁜 짓뿐 아니라 나쁜 생각까지도 삼가는 마음, 그리고 부유한 생활을 멀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할 것을 배웠다”고 적고 있다. 그는 스승들, 가족, 그리고 주위 모든 사람들로부터 긍정의 눈으로 삶의 교훈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삶의 숲 속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늘 눈이 맑고 따뜻하다. 로마 황제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음에도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부드러운 시선으로 주위의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그는 황제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마음이 넉넉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변방의 전쟁터에서도 밤늦은 시각에 홀로 자신을 마주하는 사색의 시간을 통하여 삶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오래 우려낸 차처럼 은은한 삶의 향기를 나에게까지 전해주고 있다.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로마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주변 이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많은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고, 창궐하는 전염병의 가운데 있었으며, 나랏일로 늘 바쁘게 지내야 했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 변호사들이 처해 있는 현실도 그가 있던 상황과 같지 않은가? 인근 법률유사직역의 끊임없는 위협, 전염병처럼 번지는 사법불신, 그리고 일가정 양립을 위협하는 격무에 시달리는 현실 말이다. 그가 속세를 멀리 떠나 유유자적하는 은둔자가 아니라 늘 존재를 위협하는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늘 바쁘게 국사를 처리해야 하면서도 자신을 마주하는 성찰의 시간을 꾸준히 가졌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경탄스럽다. 그가 전쟁터에서도 ‘자신에게’ 내면의 고백을 쏟아내며 겸손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듯이 우리 법률가들 역시 수많은 분쟁과 송사의 전쟁터에 서 있는 군사로서 우리의 본래적인 모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들은 늘 건조하고 매서운 분쟁 속에서 상대방과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사색과 명상은커녕 때로는 교묘한 논리의 수사학에 지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굳이 명상이 아니더라도 ‘잠깐 떨어져서 바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사람에게나 사물에 매몰되지 않고, 그 대상의 본질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지 않을까?

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다. 생애의 많은 시간들을 전쟁터와 타락한 문화, 반란의 위험 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 속에서도 찬란한 정신의 위대함을 잃지 않은 그처럼, 우리 변호사들도 전쟁터 속에 있는 군사로서 의뢰인이나 사건 내용에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고 늘 사색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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