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의뢰인이 다급히 상담을 요청하며 “여성분이라면 제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라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의뢰인의 상담 내용을 들어보니 성폭행과 관련된 것이었고 상담 과정 중 드러난 사실은 자칫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여성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는 여성의뢰인 중에는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긴 채 한동안 아이를 보지 못하여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상담을 온 분도 있었는데, 그 분은 “지하철역에서 지나가는 다른 아이만 봐도 우리 아이가 생각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목이 쉬도록 울었다”고 말하면서 더 이상 상담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성통곡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런 분들에게 내가 법조인으로서 법률적 조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처받은 이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건 여성으로서 혹은 엄마로서 느끼는 진정한 공감의 말과 진정으로 함께 슬퍼해주는 위로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나는 소송 과정에서 역시 극단적 대립의 길을 고수하기 보다는 서로를 용서하고 양보하는 타협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당사자의 소송 이후 삶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유지하던 당사자도 충분한 공감과 설명 이후에는 “상대방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 한다”라는 입장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고, 당사자가 그렇게 변화될 때 소송 이후 의뢰인의 삶도 오히려 그 전보다 한결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가사사건의 경우 조정을 많이 하게 되는데, 가끔 가사조정에 나온 상대 남성의 행동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가끔씩 상대 남성은 무례한 말을 하거나 소리를 크게 높이면 남성변호사보다 여성변호사가 더욱 주눅 들고 힘들어 할 것이라 전제한 후 무리한 언행으로 일관하며 조정에 임하기도 한다. 그런 일을 겪을 때면 마음이 힘들기도 하지만 나는 이렇듯 여성으로,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 그리고 불의에 맞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 사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한 여성이자 한 엄마로서의 지위를 가지기에 특정 집단이 느끼는 상처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법을 다룰 수 있는 지위에 있기에 내가 손만 뻗으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으며, 변호사이기에 변호사로서의 사명이라는 기준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가 하는 일들이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목적을 두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여성변호사로서의 삶에 있어 성적 차별이 없다거나 일과 가정의 양립이 온전히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직역에는 여성 특유의 능력이 필요한 영역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영역이 채워짐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 몇배 이상 노력해야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할지라도 좀 더 인내하며 그 힘듦을 감당해 나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변호사로서 우리의 용기와 그 시작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떤 이들에게는 삶 자체의 희망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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