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 대표부에 부임 받아 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전면에 크게 붙어 있던 한 광고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비가 많이 오는 길에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은 비를 잔뜩 맞고 있으면서 옆에 있는 반려견에는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사진이었다.
당시에는 사진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급하게 나왔으나, 그 사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나중에 확인해보니 한 유명 보험회사 광고였다. 사진 하단에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00 보험회사가 우산을 씌워 드립니다”라는 멘트가 있었다. 물론 이 사진은 동물 보호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진임을 알았으나, 스위스 사람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실제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동물 보호에 관한 조항을 별도로 두고 있을 정도로 동물 보호 의식이 투철한 나라이다. 스위스 헌법에 따르면 동물 보호는 스위스 연방차원에서 법으로 규제해야 하며, 특히 동물 보살핌, 동물 실험, 동물 거래, 동물 운송 등에 대해서 별도 규제하도록 되어 있다. 2005년 동물복지법과 2008년 동물복지조례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학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특히 동물의 도축과 판매에 대하여 세부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을 거주지 시청에 신고하여 주민번호와 같은 고유 번호를 받아야 하며, 이 번호를 동물병원을 통해 온라인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또한 2010년에는 비록 부결되기는 하였으나 동물의 소송당사자 능력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동물을 위한 변호사 도입제도가 국민투표에 부쳐지기도 하였으며, 실제 학대받는 동물을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벌써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이라니 최근 벌어진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앞 다투어 동물의료 서비스 개선 등 반려동물 관련 정책을 내놓은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또한 최근 동물보호법이 일부 개정되어 동물생산업이 허가제로 바뀌고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이 다소 강화된 것도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동물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으며, 실제 동물과 함께 출입할 수 있는 공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스위스는 어디가나 엄격한 청결과 질서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기차, 버스 심지어 식당, 쇼핑몰에까지 반려동물의 출입이 허용되고 있다.
물론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을 키우는 주인의 성숙한 의식과 책임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스위스는 동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에게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여 동물에 관한 규정을 인지하도록 하고 동물 예절을 배우게 하고 있다. 대형동물은 일정 기간 학교와 같은 훈련기관도 다녀야 한다. 아울러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은 주민세와 같이 일년에 1마리당 10만원 가량의 세금도 납부해야 한다.
동물을 키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권리는 균형 있게 추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동물을 단순한 소유물이나 열등한 존재가 아닌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