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는 딸 정유라의 스승을 만나러 갈 때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교실이든 연구실이든 일단 문을 연다. 노크는 없다. 모자와 선글라스, 벗지 않는다. 낯선 중년 여성의 등장에 당황한 선생님은 잠시 말을 잃고…. 그 사이 최씨가 말문을 연다.

“야 너 나와 봐. 빨리 나오라고(2013년 4월 청담고 송모 교사에게).” “당신이 뭔데, 유라 제적 시킨다고 해(2016년 3월 이화여대 함모 교수에게).” “학장한테 연락 받았죠? 저 온다고(2016년 4월 이화여대 류모 교수에게).”

희대의 불청객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두 가지. 우선 ‘맞불 놓기’. “어린 게 말대꾸야. 유라 아빠가 누군지 알아(최씨)?” “학교규정 안 지키려면 전학 가세요(송 교사).”

이화여대 함 교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따위 교수가 어디 있어. 고소할거예요(최씨).” “그럼 저는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합니다(함 교수).”

이렇게 최씨에 맞선 평교사, 평교수들이 있었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직책이 높을수록 최씨 앞에선 작아졌다. ‘비선실세’는 ‘실세’ 교육자에게 더욱 와 닿는 ‘실세’였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친 대로 실천하지 않았던 ‘장’자 돌림 교육자들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며칠 전 법정에서 본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은 머리에 흰눈이 내려앉은 듯 정수리 부분이 하얗게 새어있었다. 염색으로 가리지 못한 흰머리가 100일 남짓한 구속기간만큼 자라 있었다. 같은 처지인 남궁곤 전 입학처장은 최 전 총장 옆에서 피고인 신문을 받다가 눈물을 쏟았다.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역시 옥중에서 암과 싸우고 있다. 어떤 판결이 나오든 공들여 쌓아올렸다가 한 순간에 무너진 이들의 명예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권한이 클수록 큰 용기가 필요하며, 누렸던 권력만큼 고스란히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묵직한 진실을 이대 학사비리 사건에서 엿보게 된다. 다행히도, 이대생들은 그런 이치를 알고 있는 듯 하다.

“네가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하던데 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편법과 그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진 무능, 그게 좋은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 동안의 내 노력들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알게 해줘 고맙다. 너는 앞으로도 이런 경험 못할 거 같아 안타깝다(한 재학생의 대자보 ‘어디에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 中).”

최씨는 재판에서 “모든 일은 제가 엄마로서 한 거지 유라는 아무 것도 몰랐다”며 모정을 드러냈다. 극렬 ‘헬리콥터 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정유라는 23개월 된 아들을 덴마크에 두고 국내로 압송돼 수사 받는 신세가 됐다.

“검찰의 표적수사가 내 딸의 영혼을 다 망쳐놨다.”

법정 검사석을 향해 울려 퍼지던 최씨의 절규는 최씨 자신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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