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다시 기자가 되어 서초동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정윤회 문건’사건이 터졌다. 누군가 ‘올해 마지막 사건이자 최대 사건’이라던 이 사건은 국정농단사건, 그리고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2년 반을 넘어선 지금 ‘재조사 1호’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해 1월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보고된 2쪽자리 공식 문건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 동향’은 당시 비선실세로 거론되고 있었던 정윤회씨를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먼저 시끄러워진 곳은 여의도였다. 그런데 서초동에서는 ‘이제 곧 사건이 넘어올 것’이라고들 했다. 비선실세 논란이 어떤 형태로 사건화될까 궁금했는데 곧 형태가 드러났다. 청와대는 즉각 ‘문건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한 법적조치를 시사했고, 정윤회씨가 문건을 최초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문건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했다.

검찰은 명예훼손 부분은 형사부에, 문건유출은 특수부에 배당했다. 검찰의 역량이 집중되는 특수부에 ‘유출’을 맡긴 것이다. 형식상은 ‘투트랙’이지만 다분히 문건 내용보다 유출경위에 무게를 둔 것이다.

검찰은 이듬해 1월 초 ‘문건 내용은 허위라는 결론을 내놨다. 주요 근거는 휴대전화 통화 내역 조회 결과였다. 이른바 ‘십상시 회동’과 관련 정씨와 청와대 인사들의 통화내역이 없었고, 이들과 정기모임을 가졌다는 강남 J중식당 인근에서의 사용내역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박관천 경정이 시중 풍문을 짜깁기한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문건 수사가 ‘명예훼손’차원에서 이뤄지는 순간부터 이런 결론은 어느 정도 예정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검찰로서는 적시된 사실이 허위인지에 대한 입증책임만 지기 때문에 ‘십상시 정기 모임을 가졌다’ ‘정씨가 홍천에 은거하며 모임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는 문건의 개별적 내용의 허위 여부에 수사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핵심관계자들을 소환해 비선실세 의혹을 대대적으로 파헤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점에서 당시 수사팀은 억울할 수도 있다. 명예훼손의 통상적 수사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검찰이 ‘당시 문건에는 최순실 관련 내용이 없었다’고 반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 반박에 공감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비록 그 방향은 틀렸더라도 문건이 언급한 ‘비선실세’가 국정농단의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법형식논리로 돌파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정씨 고소로 시작된 사건이더라도 마찬가지다. 국정농단사건도 초기에는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중앙지검 형사 8부의 검사 두명으로 시작했다 결국 특검, 특별수사본부로 판이 커져 전직 대통령 구속기소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는가.

어떤 사건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수사했느냐가 중요하다. 국민들도 그 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의 재조사 포인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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