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인소송이 만연한 1심 재판

현재 우리의 민사소송 절차는, 전자소송의 확대와 대법원 ‘나의 사건 검색 시스템’ 등으로 모든 조회가 온라인상으로 가능한 상황까지 발전해 있다.

이렇게 제도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해 있지만, 70% 이상의 나홀로 소송 또는 본인소송 때문에 실제 우리 민사재판의 진행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또, 본인소송도 당사자가 제대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터넷이나 비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문제이다.

필자가 수년간 보아 온 1심 법정에서의 재판 진행의 현실은 이렇다. 재판장이 법률을 전혀 모르는 본인소송의 당사자에게 많은 질문을 해도 답답한 나머지, 대개는 연로한 이분들에게 “이 소송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하셔야 한다”고 권유하기에 바쁘다.

영미변호사들의 말에 따르면 영미에서 이러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하고, 같은 대륙법계이지만 필자가 연수 시절 여러번 갔었던 일본 법정에서도 본인소송을 보았던 기억은 없다. 영미나 일본도 변호사 필수적 변론주의(변호사 강제주의)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본인소송이 우리처럼 만연하지 않은 이유는, 진정한 당사자주의 소송에서 법의 무지는 항변사유가 될 수 없고 절차법도 판사가 도와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 항소심 법정에서도 벌어지는 사례들

1심 법정의 현실에 비하면, 그래도 고등법원 법정은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같은 2심이라도 지방법원 항소심 법정은 1심 법정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얼마 전에 필자가 재판을 기다리며 목격한 앞 사건 두 재판의 사례를 그대로 복원해 본다.

첫 번째 사건은 할머니가 원고로서 회사와 개인 등 2명의 피고에게 금전지급청구를 했고, 1심에서 개인 피고에게 승소하여 회사에 대해서만 항소를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항소장에는 ‘원고가 이미 전부승소한’ 개인이 또 피고로 들어가 있었기에, 재판장이 이미 판결이 확정된 당사자를 왜 다시 피고로 써 놓았냐고 질문, 이에 원고는 증인으로 부를 생각이라 답하므로 재판장이 정황을 알아보는데, 법무사가 서면을 잘못 쓴 것인지 할머니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워 도무지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 급기야 재판장은 할머니에게 개인에 대한 소를 취하할 것인지 아니면 항소 취하를 할 것인지 거듭 질문하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횡설수설하다가 소를 취하하겠다는 답을 해 버린다.

방청석에서 앗 하는 소리가 나고 필자도 놀라서 쳐다보는 사이, 다행히 재판장은 기일을 한번 속행할 테니 반드시 변호사에게 알아보고 다음 기일에 정확히 답하라고 지휘했다. 다음 기일에는 할머니가 변호사에게 위임을 하거나 제대로 준비해서 법정에 오실 수 있을지 우려되었고, 자칫 본인소송이 당사자에게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절감하게 해 주는 사건이었다.

두 번째 사건은 원고 회사가 피고 아주머니를 상대로 금전지급을 청구하여 1심 승소하였고, 이에 피고가 항소한 사안이었다.

원고 회사의 경우 소송대리인으로 변호사가 출석한 반면, 피고 아주머니는 또 본인소송이었는데 남편도 같이 피고석에 앉았다. 재판장이 소송대리권 없음을 이유로 남편을 방청석으로 가라 했으나, 그 이후 재판은 변호사와 그 남편과의 설전이었다. 재판장이 피고 아주머니에게 질문을 해도 아주머니는 답을 하지 못 하고, 정작 그에 대해서 답을 하는 사람은 방청석에 앉아 있는 피고의 남편이었다.

한번의 재판 방청만으로 정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보아도 피고 아주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늬만 피고’에 다름 아니었다. 방청석에서 실제 변론을 하고 있는 그 남편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의 진술을 들어 주는 재판장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3. 과연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인가?

대한법무사협회는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또는 자기결정권 침해를 논거로 들어 변호사 필수적 변론주의 도입에 반대하지만, 정작 이러한 주장은 우리 헌법 제27조 제3항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재판청구권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또 도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국민의 사법접근권이나 비싼 변호사비용 등을 논거로 들지만, 변호사 수의 폭증에 따라 변호사비용이 저렴해진 지금 그러한 비판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본인소송이 만연한 우리 현실에서는 당사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 항소심부터라도 변호사 필수적 변론주의가 도입되어야 하는바, 변호사가 대리하여 1심에서 이긴 소송을 2심에서는 본인이 수행하다가 패소한 사례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본인이 1심 소송을 수행하여 패소한 경우 그 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변호사 필수적 변론주의야말로 재판 진행의 효율성뿐 아니라 국민의 실질적 권리구제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이므로,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잘못된 프레임은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 민사소송법의 개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므로, 그에 앞서 시민단체를 포함한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따라서, 변협은 변호사 필수적 변론주의가 변호사들만의 이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진정한 권리구제를 위한 제도임을 알리는 데 앞장서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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