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일하다 보면 하마평 기사를 종종 쓴다. 대법관 인사는 현재 대법원 구성을 보고 예측한다. 가령 한 기수에서 대법관이 2명 이상 나왔다면 그 다음 기수에서 후보군을 찾는다. 판사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 현직 대법관의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겹치는 인사를 제외하면 대강의 명단이 추려진다. 그 명단을 들고 법원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인물평을 듣는다. 이 방법을 사용한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는 편인데, 대법관 한 명의 인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감안하면 불행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재야 법조계는 김선수 변호사를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가 대법관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민변 회장 출신의 진보적 성향 인사였고, 무엇보다 정부가 사활을 걸었던 정당해산 사건에서 통합진보당을 대리했던 변호사였다. 그래도 숱한 노동 사건 현장을 몸으로 체험한 법률가가 대법원에 입성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법원에 있는 분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다들 ‘훌륭한 분’이라고 하면서도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2015년 퇴임한 신영철 전 대법관은 사법독립을 크게 저해하는 행동을 하고도 6년의 임기를 채웠다. 고(故) 박종철 치사 사건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진 박상옥 대법관 지명이 논란이 됐을 때 대법원이 내놓은 대답은 ‘그게 결격사유가 되느냐’는 반문이었다. 인권 변호사에게 법조인의 자질에 외에도 중용의 미덕을 요구했던 인선 기준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 앞에선 사법부 신뢰를 저해할 요소들도 큰 결격사유가 아니라는 작은 잣대로 줄어들었다. 어느 재판부보다 치열하게 논쟁을 벌여야 할 대법원 구성원을 발탁하는 데 ‘균형감각’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인지도 알 수 없다. 

대법관들의 취임사에선 ‘소수자 보호’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정치인도 하고, 정부도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야 말로 여론으로부터 독립돼 소수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다. 미 연방 대법원의 ‘브라운 판결’도 백인학교에 흑인을 입학시켜서는 안 된다는 압도적인 여론을 이겨냈기에 명 판결로 역사에 남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 대법원이 결론낸 몇몇 사건을 돌아본다. 회사가 인사권을 남용해 직원을 부당 전보시켰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통상임금을 줘야 하지만, 혹여 기업이 타격을 받을까 ‘신의성실의 원칙’을 꺼내들어 정당한 임금 요구를 잘라냈다.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기업의 손을 들어주며 ‘고용책임이 없다’고 결론낸 사건에선 7년 동안 소송을 벌인 근로자가 빚만 남긴 채 생을 마감한 일도 있었다. 

여기 두 대법관 후보가 있다. 한 사람은 연수원 기수도 적합하고, 지역안배 측면에서도 무난한 조건을 갖췄다. ‘튀는 판결’을 한 적이 없어 인사청문회 통과도 수월할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은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고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법조인 경력을 고스란히 노동현장에서 보내고 소수자의 편에 서왔다. 어느 쪽이 지금 대법원을 뜨겁게 만들 적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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