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대 대한변협 집행부가 법조화합을 역점사업으로 삼는 모습이 반갑다. 모든 회원이 변협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는 하나된 변협은 우리 변호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지난 몇년 간 청년변호사 사이에서는 법률가 양성 제도를 두고 제도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람에 대한 비난까지 이어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을 희망하며 칼 포퍼의 ‘세 세계 이론’을 곱씹는다.

포퍼는 물질의 세계인 ‘세계 1’ , 주관적 마음의 세계인 ‘세계 2’와 구별되는 ‘세계 3’을 고안했다. 객관적 사상의 세계, 마음의 산물이면서도 그 인식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 3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상, 언어, 윤리, 제도, 과학, 예술 등을 설명한다.

인간 정신이 만든 세계인 세계 3이 일단 존재하게 되면 그것을 생산해낸 인간과 분리된다는 포퍼의 주장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산출한 지식이나 이론 역시 오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식은 비판에 열려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면모를 지닌다.

세계 2와 세계 3의 구별을 통해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과 그가 내놓은 주장은 구분해서 생각하게 된다. 포퍼는 객관적 지식은 어떤 사람의 행태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말에 대한 비판’과 ‘사람에 대한 비판’을 구분해야한다고 설파한다. 비판과 토론에서 누가 주장했는가보다 어떤 주장을 했느냐에 주안점을 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것이다. 이 전환은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의 ‘주장’을 동일시하지 않는 혜안을 선물해준다.

동서고금의 법률가들은 어떤 주장을 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그 주장을 손쉽게 묵살하지 않는 자유롭고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라는 세계 3의 아이디어는 내가 틀릴 수 있음을 고민하고,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는 법률가의 덕목과 잇닿는다. 넬슨 만델라의 말씀처럼 “최선의 무기는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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