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눈을 감으면 나를 압도했던 그 웅장함이 눈에 선하다. 세상에 이렇게나 큰 집이 있었나 싶었던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57. 우리가 흔히 본원이라 부르는 서울법원 종합청사에서 시골출신 촌놈인 나는 그렇게 변호사 사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시작된 사무원 생활은 법과대학 4년간의 두꺼운 법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신청, 집행, 공탁 등을 필드에서 직접 체화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위 ‘乙’로서의 비애감을 깊이 느꼈던 시간이기도 하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잘 나오지 않던 서관 2층 구석의 열람등사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수천 장의 기록을 한장 한장 손으로 복사했던 기억, 동관 10층 재판부 사무실에서 실무관에게 반말지거리에 욕설을 들으면서도 말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억. 별관 2층 파산부에서 조카뻘 공익요원에게 굽실거리며 채권배당표를 분류하던 기억.

이런 기억들이 소복이 쌓이며 조금씩 조금씩 변호사 자격증에 대한 갈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항상 왼쪽 가슴에 패용하던 푸른색의 사무원증을 떼고 노란 바탕의 변호사 신분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모여 나를 새벽 토익학원으로, 퇴근 후 LEET 스터디 모임으로 인도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옛일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지만, 제법 많은 동기들이 열람실에 남아 법서를 파고 있다. 나도 나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가지고 이곳 로스쿨에 왔지만, 저 책상위에 사람들도 다들 그들의 인생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회일을 하던 사람 좋은 형님, 남편 뒷바라지에 개구쟁이 아들 둘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10년을 살다 캠퍼스로 돌아온 내 친구, 못된 상사 밑에서 고생 많던 인턴생활만 하다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한 순진한 동생까지. 모두 모두의 인생사가 모여 이곳에서 변호사의 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득 변호사 사무실에서 여직원으로 일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어느 변호사님의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내가 나중에 변호사 시험에 붙어도 사람들이 신기해할까? 아닐 것이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 내 이야기는 별 재미없는 시시한 이야기에 불과 하니까. 애잔하게 떠올랐던 옛일을 접고 다시 딱딱한 법서로 돌아가며 나는 생각해 본다.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가?” 잘나가는 변호사는 아니더라도 겸손한 변호사이고 싶다. ‘차카게 살자’처럼 너무 뻔한 자문자답인 것 같지만, 내 청춘속에 乙의 삶이 녹아 있기에, 그리고 목회자의 마음을 가진,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담긴, 비정규직의 씁쓸함이 담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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