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대선’. 이름에 걸맞게 모양새라도 아름답게 치를 순 없는 건지 생각해 본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도 비록 대립하는 의견일망정 극소수를 빼곤 반대에 대한 관용을 보여줬다. 축제의 흥마당인 양 토론과 대화를 했고, 물리적 폭력도 단호하게 배격했다.

그런데 바야흐로 열흘 남짓한 대선은 마치 총탄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보다 여유를 가지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풍토는 꿈에서나 가능한 바람인가. 본질을 비껴간 채 머릿수 계산에만 급급한 포퓰리즘, 거짓과 왜곡으로 포장한 가짜뉴스, 분노를 담은 사생결단식 대립각은 이제 신물이 난다.

문득 작년 6월 ‘브렉시트’ 탈퇴 당시의 영국이 생각났다. 당시 영국은 나라가 두 동강이라도 날듯 거센 대립이 있었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탈퇴 반대에 직위를 내걸었다. 그런데, 막상 국민투표 표결이 ‘탈퇴’ 51.9% 대 ‘잔류’ 48.1%, 불과 3.8% 차이에 불과했음에도 바로 다음날, 캐머런은 하나의 영국을 외쳤다. 브렉시트 사태를 수습할 내각은 당초보다 2개월 빨리 구성됐고, 찬성과 반대파를 골고루 기용한 통합형으로 짜여졌다.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 전통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비교적 탄탄한 펀더멘털을 보여줬고, 외신들도 이는 보이지 않는 영국 경제의 자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솔직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영국은 국민의 우려를 상당부분 덜어냈다. 당장 폭락할 것 같던 런던 부동산 시장은 유동성 비율 규제 덕에 잠잠해졌고, 영국 중앙은행도 선제적, 적극적인 안정조치를 공표하여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표 결과를 둘러싼 반발 시위나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도 크지 않았다는 거다. 찬성과 반대파 사이의 유혈 충돌도 없었다.

경탄스러운 건 ‘데이비드 캐머런’의 마지막 연설조차 전혀 비장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나라를 이끌 선장으론 적절치 않은 거 같다”는 유머로 말문을 열더니 “결과에 대해선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하고 결단력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다. 이제 영국은 EU와의 탈퇴 협상을 위해 가장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과연 ‘장미대선’ 이후, 이 나라를 이끄려는 리더들이 무슨 메시지를 던질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초불확실성의 시대 앞에 중요한 결단의 순간을 맞이한 듯하다. 차기 지도자는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국가안보, 국민경제를 챙기고, 통일까지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과거의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고, 보다 민주적인 대한민국을 건설하란 요구도 거세다. 분명 이 나라의 대내외적 위기 앞에 엄중한 책무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류는 위기에 의해 파괴되고, 이류는 위기를 이겨내며, 일류는 위기 덕분에 발전한다지 않는가. 비록 당장은 표심에 급급할지언정 승패의 가름선 이후엔 ‘일류’를 지향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좌절과 분노를 떨쳐내는 협치의 모습, 대립과 반목으로 얼룩진 국론 분열을 막겠다는 굳은 의지 말이다.

부디 ‘장미대선’의 승자는 역경의 극복을 통해 민주주의의 강함을 드러내고, 나뉘지 않고 하나인 게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 지도자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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