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모르는 번호였습니다. 송화자가 먼저 말하지 않아 제가 먼저 말합니다. “여보세요, 누구신지요?” “저는 000 아버지입니다. 제 아이가 …” 순간 저는 약간 놀랐습니다. 대법원 국선 피고인인 살인자의 아버지, 80세 전후의 아버지였습니다. 평소에 직원께 저 없을 때 찾는 전화가 오면 제 휴대폰으로 연결해 달라고 얘기했기에 직원이 제게 연결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뿔싸. 이런 건은 미리 직원께 말했어야 했는데.

그 아버지에게서 상고심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바람과 당부의 말씀을 듣고 전화를 끝냈습니다. 그 살인 사건의 두꺼운 기록을 대법원 열람실 구석에 앉아 보았습니다. 난자당한 시체와 그 단계별 부검 사진들. 난자당했지만 살아난 아이의 신체 사진들. 그리고 제가 동의할 수 없는 낮은 형량. 아들이 평소에 성실했고 정신질환 때문이라는 아버지의 말과 접견장에서 자신은 죽이려고 한 게 아니고 나는 감옥을 지금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반성의 기미가 없는 공직자인 피고인의 말을 듣고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매일 사무실로 저를 찾는 전화를 하였습니다. 저는 난자당한 아이의 컬러 사진을 피고인에게 들이 밀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저도 이제 사람들이 평생 한 번 겪을 동 말 동 할 사건들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 별별 일을 하고 지식도 쌓으면서 내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은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강간 무고 사안, 위헌적인 특가법으로 말미암아 초범인 작고 젊은 여자가 작은 시비로 인해 중형이 선고될 사안 등 당사자에게는 평생의 한번일 큰일을 저는 계속 접하고 있습니다.

누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이번달은 변호사로서 가장 정신적으로 고민되었습니다. 예행연습이 없는 일, 항상 실제 상황의 일을 하면서 앞으로의 험난한 일을 예상하고 법조 선배님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다음날 사람을 살리러 재판장에 갑니다. 실제상황이니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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