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판례는 의료인과 환자에게 살아있는 임상진료지침이다. 진료를 위축시킨다는 비난이 있을 지라도 엄격하여야 한다. 의료인들을 엄단할 목적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사고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판례에서 운전자와 보행자의 주의의무를 강화하면 사고가 줄어드는 이치와 같다.

환자 측에게 의료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를 물으면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의료사고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예를 들어 무호흡을 보이는 신생아에게 ‘1. 신생아의 열손실 방지, 2. 기도를 확보하고 구강과 외비공의 흡인을 실시, 3. 호흡·심박수·피부색 확인, 4. 호흡의 증후가 없으면 양압환기를 실시, 5. 심폐소생술 시행, 6. 약물투여 등 화학적 소생술 실시, 7. 기관내 삽관 실시’ 등 응급처치순서를 적시하고 이대로 시행하지 않은 경우 엄격하게 책임을 물었더니 신생아 사망률이 낮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법원이 구체적으로 적시한 진료준칙은 의료인들에게는 유권해석과 같은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

복강경을 이용한 자궁근종제거수술 시 요관을 손상시킨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이 의료인에게 면책판결을 내리자 내시경으로 인한 장기천공사건이 줄지 않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급심에서 의료진의 잘못을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에서는 복강경시술 중 요관손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 합병증이라는 전제하에 “환자 측에서 구체적으로 일반적인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의 주의의무위반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데, 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하여 청구를 기각시켰다. 이 판결을 접한 어느 의과대학교수가 “이제 전공의 교육이 힘들게 되었네요”라며 걱정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동안 전공의들에게 “자궁과 요관의 위치를 확인하고, 요관을 조심스럽게 박리하여 요관손상은 막아야 한다고 교육시켜왔는데 그렇게 하라고 교육시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환자 측에서 “자궁과 요관이 유착되어 있지 않았고, 집도의가 요관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요관이 있는 부위로 복강경을 무리하게 집어넣는 바람에 손상을 입혔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복강경 시술을 한 집도의만이 알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반적 합병증이라면 일반인의 물론 의료인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악결과로서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료인에게 악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수술 전후 모든 과정에서 경과관찰과 추적감시의무가 더욱 가중된다고 해석해야 법논리에 맞다. 눈, 비가 올 때 제동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1/5 이상 감속운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일반적 합병증은 불가항력적 사고로서 원칙적으로 환자가 수인하고, 일반적 수준을 벗어난 중대한 과실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없고, 입증책임분배원리에도 반한다. 따라서 변론주의하의 민사소송구조에서 소송대리인들은 의료판례가 살아있는 진료지침이 되어 의과대학 교재로 사용될 수 있도록 논리적 변론과 과학적 입증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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