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기일에 출석하면 재판부의 요구 또는 자체적인 판단에 의하여 구두 변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가 종종 있다.

변론의 청자를 재판부가 아닌 상대방 당사자 또는 상대방의 소송대리인이라고 전제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우리 의뢰인이 들어주기를 염두에 두고 변론하는 상황도 있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식적으로 구두변론의 상대방은 재판부라고 상정하고 변론을 진행하게 된다.

얼마 전 원고 대리인으로 출석한 변론기일에서 연세가 지긋한 피고 대리인이 원고 대리인에게 연신 삿대질을 하시면서 원고 측 변론 전개에 관하여 불만을 표출하는 일을 겪게 되었다. 재판부의 제지도 없었던 탓에 한동안 손가락질을 받으며 묵묵히 재판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은 모를 바 아니었지만, 그 날 하루는 재판을 마치고 나와서도 내내 무거웠다.

그 일이 있은 후 원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다른 사건의 변론기일이 있었다. 이 사건의 피고 대리인으로 이제 갓 1년차인 변호사가 담당하고 있었고, 양 당사자 간에 관련 소송도 많고 서로 형사고소가 이루어지는 등 감정적으로 골이 깊은 사건이었다.

변론기일에서 피고 대리인은 자신의 의뢰인이 가지고 있을 감정을 표출하는 바 없이 자신의 주장 및 입증계획만을 조리 있게 설명하고 재판을 마친 후 원고 대리인에게 웃는 얼굴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법정에서 같은 직역에서 함께하는 변호사에게 삿대질을 하지 않는 것만이 에티켓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여 상대방 변호사와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의뢰인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살수도 있다는 과도한 조심성으로 인해서 필자 역시 서로 고생하고 돌아서는 상대방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기본적인 인사도 선뜻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만난 변호사로부터 사건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진심어린 인사를 건네받았을 때 필자가 느꼈던 일상의 기쁨은 오늘도 법정에서 치열하게 사건을 전개하고 있는 모든 변호사가 기꺼이 누려야할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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