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사자보다 배고픈 변호사가 무섭다”는 말이 몇해 전만 해도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다. ‘배고픈’과 ‘변호사’라는 단어의 호응부터 어색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볼 때 어쨌든 변호사는 먹고 살 만한 직업으로 인식됐다. 또한 변호사로서의 자긍심과 명예가 도덕적 해이를 막아줄 최소한의 장치가 되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법조기자를 하며 이러한 생각이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히 ‘집사 변호사’에 대한 취재를 하며 막연했던 불안감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애초에 ‘집사’라는 단어는 ‘배고픈’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변호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 집사 변호사들의 행태는 스스로 변호사보다는 집사를 자처하는 듯 보였다.

과거 집사 변호사들이 일부 기업총수와 정치인 등 이른바 ‘범털’들을 위해 옥중 뒷바라지를 해왔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재력이 있다면 일반 수용자들도 어렵지 않게 집사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다.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접견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의뢰인과 잡담을 나누는 것은 일상이요, 담배나 개인 소장품 등을 몰래 건네거나 바깥의 잔심부름도 처리해준다. 일부 남성 수용자들은 낮은 연차의 여성 변호사들을 고용해 말동무로 삼기도 한다. 통상 시간당 20~30만원 또는 월 250~300만원을 지불하고 정해진 시간에 접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구치소 내 제한된 접견 시설을 일부 집사 변호사가 독점하면서 일반 수용자들의 접견권까지 침해받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대한변협이 징계에 나섰다. 지난 1월 선임계를 내지 않고 수용자를 장기간 접견하거나 단시간에 다수의 수용자를 접견한 집사 변호사 등 10명을 무더기로 징계한데 이어 최근에는 선임계를 냈지만 월 70~130회 과도하게 접견권을 남용한 변호사에게도 징계 처분을 내렸다. 변협은 한달에 12회 이상, 수용자 3명 이상을 두달 이상 지속적으로 접견한 변호사를 대상으로 집사 변호사 여부를 따져 징계 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놨다.

집사 변호사 문제는 단순히 교정 질서를 흔드는 수준을 뛰어넘어 변호사가 수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편법과 불법에 앞장서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배고픈 변호사가 무서운 이유는 이들이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무시하고 돈벌이에 급급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그 폐해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진 ‘국정농단 사태’의 이면에도 돈과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한 ‘집사 변호사’들의 그림자가 곳곳에 보인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배고픈 변호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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