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계속되는 불합격으로 쓰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양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곤 했다. 수험서를 보다가도 순간순간 감미로운 음악을 듣다보면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으로 입은 심신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느낌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베이를 통해 구입한 클래식 음악 CD가 400장에 가까운데 그 중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졌다는 러시아 태생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은 유난히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특히 ‘비창’이라 불리는 교향곡 6번은 차이코프스키 사망 직전에 작곡·초연된 곡으로 마치 장송곡처럼 삶의 희로애락이 바람에 흩날려 심연으로 사라지는 느낌으로 마무리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에 대해선 동성애로 인해 지인들로부터 강요된 것이라는 설과 콜레라 때문에 병사했다는 설이 있지만 보수적인 제정 러시아 사회의 외로운 소수자였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이제 이역만리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동성애자였는지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진심을 다해 삶을 대하는 고뇌가 담겨있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그 가치 역시 변치 않을 것이다.

내가 최근 맡은 국선 사건 피고인은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차량을 끌고 관공서로 돌진해 분신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구치소에 가서 만난 피고인은 나를 보더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접견실에 앉자마자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쉰살이 넘은 남자가 변호인이라고는 하나 처음 보는 타인 앞에서 자신이 잘못했다며 흐느껴 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진심을 보았다. 자신의 과오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용기 있게 인정하는 것은 변호사인 내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한 진심이 보일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깨닫고 반성할 때, 그리고 그 진심이 마음을 통해 전달될 때 비로소 용서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 혼란스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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