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은 마치 형사소송법 교과서를 펼쳐놓은 듯 하다. 대표적으로 ‘공소장 일본주의’가 그렇다. 공소장 외에 법관에게 예단(豫斷)을 줄 수 있는 서류나 물건의 제출을 금지하는, 어찌 보면 당연하기에 교과서에도 몇 페이지 없는 이 원칙이 법정에 등장했다. 시작은 지난 13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재판이다. 변호인들은 “이미 무죄가 확정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등을 기재했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주장했다. 마치 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불법승계를 계획하고 추진해 온 것처럼 적혀 있다는 것이다. 수뢰자로 기소된 최순실씨 측도 마찬가지다. 변호인은 “특검 공소장은 중편소설 형식”이라고 했다. 검사가 공소장에 대해 듣는 가장 심한 모욕이 ‘소설’이라고 하는데, 분량까지 정해 ‘중편소설’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은 공소제기 자체를 무효로 할 만큼의 중대한 잘못이지만 실제로 이를 이유로 한 공소기각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법원도 복잡하고 은밀한 사건에 대해서는 범행의 동기나 경위를 납득할 수 있게 구체적인 사정을 풀어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주 보이는 주장은 “파견검사는 공소유지에서 빠져라”라는 것이다. 이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시작으로 이재용 부회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최순실씨 뇌물 재판 등 거의 모든 특검 사건에서 제기됐다. 특검법상 파견검사가 공판에 관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검법상 특검 직무범위는 수사, 공소제기여부 결정 및 공소유지이고 이를 위해 다른 공무원을 파견받을 수 있다. 문 전 장관 사건에서 이미 “관련법 해석상 파견검사의 공소유지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이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5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재판에서는 이 문제로 대립하다 자리다툼까지 생겼다. 김 전 실장측이 특별수사관들이 검사석에 앉아 있는 것을 지적하며 “그렇다면 우리도 재판보조를 위해 변호인석에 변호사 아닌 사람도 앉게 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이날은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이었지만 증거인부도 제대로 못한 채 한 시간 반 넘게 기싸움만 이어졌다. 재판이 지체되자 공동피고인인 조윤선 전 장관 측은 다른 재판 참석을 위해 도중에 자리를 떴다. 보다못한 김소영 전 비서관 측이 나서 “우리는 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 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공소장이 소설 같다’는 것은 방어권 행사를 위해 공소사실을 특정해 달라는 주장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무자격자의 소송행위 또한 당연히 막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법정다툼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상 1심 재판기간은 3개월이다. 자칫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실체적진실의 발견을 놓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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