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발표된 ‘판사·검사·변호사 및 법원 서기복제규칙’에 따르면 법복의 가슴 가운데에 무궁화 무늬(지름 20cm)와 그 안 쪽에 무궁화 무늬(지름 10cm)를 넣었는데 판사의 경우 무궁화 무늬의 색이 백색, 검사의 경우 황색, 변호사의 경우 자색이었다. 반면, 변호사 법복은 일제 시대인 1920년에 공포된 ‘법복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검은색 모직 바탕에 오동나무 꽃 무늬를 수놓은 법복과 무늬구름이 있는 모자를 착용하였다.

2013년 6월 21일 문화재청은 고 김홍섭 법관(1915~1965년)이 고등법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입었던 판사 법복과 그분이 1941년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하였던 변호사 법복에 대하여 문화재 등록 예고를 하였다. 근대의 생활 유물을 문화재로 등록하겠다는 취지였다. 검정 고무신에 상하의를 짝짝이로 입고 다녔다는 분의 법복이 국가문화재로 등록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2013년 8월 27일 김홍섭 전 법관의 법복은 등록문화재 제546호, 변호사 법복은 등록문화재 제547호로 각 등록되었다. 이 법복들은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누리면서 후대로 전해질 것이다.

이 법복을 통하여 지난날의 역사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청렴과 애민(愛民)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사도법관’의 정신을 되짚어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역사적 사건과 법조인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다 많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한대행이란 지위에서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를 이끌었던 이정미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재판관이 지난 13일 퇴임했다. 이 전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우리 헌법재판소는 바로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대통령 탄핵인용결정을 두고 한 말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2~3회에 걸친 변론, 수많은 증인 신문 등 거의 초인적인 절차를 소화해야 했다. 일부 대리인들의 거친 언행에도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평결에 대한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써야 하고, 신변의 불안도 느껴야 했다.

헌재 권한대행으로서 느껴야 했던 압박감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터다. 그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준 것이 이 전 재판관이 선고일 출근하면서 머리 뒷부분에 헤어 롤 2개를 낀 채로 출근하는 장면이었다. 일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발생한 ‘사건’이었다. 헌재 직원들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뛰어 나와 취재기자들에게 보도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사정했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 했던가, 대한민국 헌재 권한대행의 헤어 롤 출근 장면은 SNS를 통하여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다. 한 개인으로서는 민망하기 그지 없을 일이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맡은 소임을 다 하기 위해 애쓰고 힘들어 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까닭이다.

헌재에서 이 전 재판관에게 문제의 헤어롤 2개를 기증하여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는 말이 들린다. 2016헌나1 결정문과 더불어 이 헤어 롤을 헌재 기념물로 보관하자는 청원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헤어 롤은 면류관처럼 찬란하지 아니한가. 국민을 위해 일한 성실한 공복(公僕)에게 주어진 찬사에 다름 아니다. 불확실한 소문일망정,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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