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나는 종종 수업을 빼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곤 했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고, 책에서 많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세상은 내 앞에 던져져 있었고 나는 세상의 지도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단순한 산수를 통해 하루에 1권씩 책을 읽으면 1년에 365권을 읽을 수 있고, 70세까지 50년을 매일 1권씩 책을 읽어도 2만권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는 그 1/10도 읽지 못할테니 내가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2000권도 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세상의 작은 귀퉁이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죽을 운명이란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될 만큼 우스운 생각이지만 그땐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가을날 강의실 창밖으로 단풍나무를 바라보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시인은 가을이 되어 엽록소가 분해되고 카로티노이드가 남아 노란색과 붉은색을 반사한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표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그저 예쁘다고만 느꼈을 단풍을 보며 시인은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고 표현한 것이다. “초록이 지쳐”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단풍이 드는 시간적 경과, 색깔의 변화, 인생의 무상함까지.

그 가을날 나는 세상이 이해의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놀이공원에서 자유이용권을 들고 어떤 놀이기구를 타야할지 결정을 못해 우두커니 서 있는 어리석은 아이와 같았다. 놀이공원에 왔으면 신나게 놀면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을 열면 그 이상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삶은 목표를 향한 달리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한 선물이니, 내게 허락된 만큼 세상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즐기러 나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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