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지방변호사회 월간 소식지에 ‘나의 변론 이야기’라는 꼭지가 있다. 선후배 변호사님들의 변론 기술을 엿볼 수 있어서 그 꼭지를 좋아하는데, 지난달에는 재심 사건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님의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변론기가 실려 더욱 반가웠다.

자신의 변호사 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사건이지만 처음에는 특별하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한명도 아니고 무려 일곱명이 검사 앞에서 하나같이 자백한 사건이라 뻔한 사건으로 생각했다는 거다. 게다가 주범 두명에 대해서는 이미 유죄 판결이 확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기록을 다시 보게 되었고 무죄 사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가출 청소년들을 보니까 또 그렇게 억울해 보일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줄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었다고 했다.

유죄가 확정된 두명을 포함해 전원 무죄를 이끌어낸 그 엄청난 열정과 노력은 감히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박 변호사님이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것이 운명일까, 아니면 그 사건에 달려들었던 것이 운명을 만들어낸 것일까.

김용담 전 대법관님이 판사직을 마무리하며 쓴 책에서 읽었던 사건이 생각났다. 토마스 본햄이라는 사람이 의사 면허 없이 의료행위를 하자 영국 왕립의사협회가 그를 기소해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당시 제정법상 왕립의사협회는 의사 면허를 발급할 권한도 있었고, 무면허의사를 소추하여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과할 수도 있었다. 본햄은 불복해 상고하였는데, 에드워드 쿡이라는 법관이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상고를 인용한 사건이다. 1610년 영국의 이 사건은 199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플로리다 세미놀족(Seminole Tribe of Florida v. Florida)’ 사건에서 인용될 만큼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한다.

무면허의사 사건은 당시 드물지 않은 사건이었는데, 평범하고 시시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이 에드워드 쿡을 만나 세기와 세계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쓰셨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보는 재판관의 눈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여야 한다. 시시한 사건은 없다. 그 속에 감춰진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진흙 속에 묻어버리는, 멀어 버린 눈이 있을 뿐이다.”

인용한 문장에서 ‘재판관’을 ‘변호사’로 바꾸어 보았다. 박 변호사님의 사례를 넣어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된다. 운명의 사건은 평범하고 뻔한 사건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책상 위에 놓인 기록 뭉치들을 본다. 저 속에 내 인생의 운명의 사건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꾸만 뻔한 사건이라는 결론만 나오니, 나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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