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헨데가 쓴 동화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는 것이다. 모모는 특별히 좋은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묵묵하게 들어줌으로써 말하는 사람의 고민을 풀어준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는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의 직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불과 몇년 되지 않는 변호사 생활에서 종종 말을 잘 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할 뿐만 아니라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말을 자주 하는 직업이기에, 타인의 말을 듣고 있기 보다는 내 말을 전달하고자 하는 습관이 쌓이게 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느 토론장이든 유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 이상으로,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나아가 상대방의 말을 끊고 본인 얘기를 늘어놓는데 더욱 열중하는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다. 또한 증인신문을 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경우는 원하지 않는 대답을 하는 증인을 마주할 때보다도, 질문을 채 듣지도 않고 답변하거나, 질문과 무관하게 본인이 하고 싶은 답변만 반복하는 증인을 만날 때이다. 결국 변호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하려면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마주할 때 느끼는 만족감을 상대방에게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의뢰인의 입장을 대신하여 말하는 직업인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 재판부의 말을 잘 듣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모모가 사는 마을에 나타난 ‘회색 신사’들의 꾀임처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다는 핑계로 타인의 말을 진중하게 듣는 여유를 쉽게 가지기 어렵다.

소설 ‘모모’의 화자는 회색신사의 꾐에 빠져 여유를 잃어버리면 지독한 지루함을 느끼며 공허함 속에서 뭐든지 바쁘게 해결하려고만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변호사 업무에 지루하거나 때때로 공허해진다면,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시간을 들여 들어주는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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