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펌 국내 진출 22곳, 국내 로펌 미국 진출 전무
법률시장 경쟁 가속화 … 합작법무법인 설립은 “글쎄”

미국 법률시장 빗장이 오는 15일부터 완전히 풀린다. 이에 미국 로펌은 우리나라 로펌과 합작법무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변호사와 외국법자문사를 고용해 국내외 법률문제에 대한 자문을 할 수 있게 된다.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이 시작되면서 미국 로펌과 변호사는 앞다투어 우리나라로 진출했다. 미국이 원자격국인 외국법자문사는 100명(3월 7일 기준, 상단 표 참고)으로, 전체 외국법자문사의 77.5%에 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설립 및 외국법자문사 등록이 가능하게 된 2012년과 법률시장 완전 개방을 앞둔 2016년에 외국법자문사 수가 크게 늘었다.

이에 반해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수는 증가폭이 크지 않다. 법률시장 개방을 시작한 첫 해에만 총 13곳이 변협에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로 등록했으나, 이후 등록 수는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2017년 등록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는 한곳도 없다. 우리나라에 진출할 의향이 있는 외국 로펌 대다수가 상대적 우위를 선점하고자 법률시장 개방과 동시에 우리나라에 진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중 본점 소재지가 미국인 로펌은 22개로, 전체의 81.5%에 해당한다.

미국 로펌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적, 물리적 거리에 지장을 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법률자문을 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이다.

2012년 우리나라에 진출한 쉐퍼드 멀린(Sheppard Mullin)은 “대한민국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그에 따른 법률분쟁이 많아졌다”면서 “대한민국에 진출함으로써 대한민국 기업에 실시간 법률자문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1호’ 미국 로펌 롭스앤그레이(Ropes&Gray)도 “대한민국 고객이 미국 로펌에서 법률자문을 받으면, 시차로 인해 답변을 늦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서울사무소 개설 후에는 시차 없이 고객 측 실무진은 물론 최고경영진과도 즉시 소통할 수 있고, 이메일, 전화는 물론 대면 소통도 원활하다”고 이점을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 로펌은 미국 진출에 소극적이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로펌은 아직 한곳도 없다. 우리나라 로펌이 진출하는 나라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 편중돼있다. 특히 베트남에 가장 많은 로펌이 진출해 있다. 이 중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법무법인(유한) 율촌,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법무법인 지평은 호치민과 하노이 두곳에 사무소를 개소하기도 했다.

몇몇 로펌에서는 그간 해외사무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 진출 기반을 마련 중이다. 2004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꾸준히 해외사무소를 늘려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은 “전 분야에서 경력 전문가와 고문, 전문위원을 적극적으로 영입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으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나가 영미계 로펌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내공을 쌓을 생각”이라고 미국 진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밖에도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해 5월 국제법연구소를, 법무법인 화우는 같은해 8월 디스커버리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법률시장 개방에 의한 영향, 국내외 로펌 간 의견 엇갈려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사이에서는 법률시장 개방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로펌과 업무 분야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외국법자문사법상 외국법자문사는 국내 소송은 불가능하며, 원자격국 법에 관한 자문만을 할 수 있다.

‘외국법자문사 1호’ 김용균 미국 변호사는 “당초 외국 로펌이 대한민국에 진출하면 견제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현 외국법자문사법하에서는 시장이 완전 개방되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와 미국 뉴욕주, 캘리포니아주에서 모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신영욱 오멜버니앤마이어스(O'Melveny &Myers) 대표는 “요즘 서울사무소에 물어보면 법률시장 개방에 의한 영향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면서 “외국법자문사는 국내 소송을 할 수 없어서 조금 불편하지만 국내 회사들이 외국에서 사업이나 투자를 할 때 생기는 법률문제를 서울사무소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깊이 있게 도와줄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오히려 국내 기업이 더 우수한 법률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병수 외국법자문사(제2대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장)는 “국내 법률시장이 국제화되면 대한민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데 더욱 더 우수하고 편리한 법률서비스를 받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면서 “국내 법조인들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 로펌과의 합작법무법인 설립에는 회의적이다. 외국법자문사법에 따라, 합작법무법인에서 외국로펌 지분율과 의결권은 최대 49%로 제한된다.

롭스앤그레이는 “합작법무법인을 설립해 대한민국 법 자문을 할 계획이 없다”면서 “국내법 관련 업무는 국내 로펌에 비해 경쟁력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영미법 관련 업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국내 로펌과 변호사 사이에서는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라는 우려가 크다.

미국 대형 로펌들이 우리나라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 세계 1위인 레이텀앤왓킨스(Latham&Wat kins), 2위 베이커앤맥킨지(Baker&McKenzie), 3위 DLA 파이퍼(DLA Piper) 모두 우리나라에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로 등록했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로펌도 늘고 있다.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 챈스(Clifford Chance)가 2014년 처음 국내에서 매출액 100억원 이상을 달성한 이후, 미국계 로펌인 클리어리 가틀립 스틴앤해밀턴(Cleary Gottlieb Steen&Hamilton)도 지난해 100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해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대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변협·법무부가 공동 주관한 ‘제1기 청년법조인 해외진출 아카데미’ 수료 후 미국 로펌에서 1년 넘게 근무한 최정지 변호사(변시 3회)는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청년 변호사 간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긍정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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