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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결 정
이경원 국민일보 기자  |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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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호] 승인 2017.03.06  10: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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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첫 문장)를 이렇게 해 봤는데… 맞습니까?” 신문사에서 최고의 아양은 ‘정답 문장’을 점검받는 것이라고 어느 선배가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만사를 전하는 기사지만 다 쓰는 법칙이 있고, 바른 문장과 틀린 문장이 있다는 얘기였다. 글이 수학 문제도 아닐 텐데 정답, 오답이 다 뭔가 싶었다. 기사가 고쳐지면 배우기에 앞서 야속해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니 ‘비교적 잘 쓴 글’이 있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또 타성을 안목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조언이 들린다.

‘가장 잘 쓴 글’ 개념이 가능하다면 헌법재판 결정문이 후보에 오를 것이다. ‘법원 판결문에 비해 너무 길다’는 비판이 있지만 결정문만의 매력을 말하는 이도 여럿이다. 어느 결정문은 도덕관의 뿌리를 설명하려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끌어왔다. “동냥은 못 주어도 쪽박은 깨지 말라”는 구수한 속담이 담긴 것도 있었다. “여성에 대한 유혹의 방법은 남성의 내밀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속하며…” 재판관들이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대목에선 ‘나도 그런가’ 흥미진진했다.

꼭 ‘정답’이라서 아름다운 건 아닐 테다. 한 국회의원은 헌재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결정문을 보면 ‘이래서 대한민국 법적 공동체가 유지되는구나’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 의원은 후보자가 “판례는 그 기초가 됐던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경되는, 유동적인 것”이라고 답하자 깊은 동감을 표했다. 세상은 심판정 밖에서 더욱 빨리 변했고, 현실은 결정문보다 조금씩 더 복잡했다. 한동안 광학은 빛이 직진만 한다고 믿었다. 쿼크와 랩톤이 물질의 최소 단위였던 때도 있었다.

헌재는 이 지식의 도정을 겸손하게 따라간다. 인간이므로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토로가 그대로 담긴 문장도 있었다. 김이수 재판관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무의미하고 허황된 것이라는 초기의 일축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 보편적으로 수용된 것들이 적지 않다”고 썼다.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오답’이라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비판적 합리주의에 공감하는 이가 외려 많았다.

‘2016헌나1’의 분위기를 묻는 이들에게 “결정문을 봐야…”라고 답하며 꼭 취재력 부족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귀 기울일 대목이 어느 한편에만 있지 않았고, 공분이 정당할지언정 법리와는 또다른 말이었다. 그 사이 심판정 밖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곧다가도 휘어졌고, 광장은 랩톤처럼 또다시 쪼개졌다.

지나고 나면 현자가 되는 사람들이 결정문 어느 대목을 가리키며 오답을 운운할 지도 모른다. 타성을 안목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조언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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