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판결 항소율이 1990년 8.3%, 2000년 52%, 2010년 68.4%, 2015년 72.3%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 상고건수도 2000년 28건, 2005년 48건, 2010년 77건, 2015년 119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의료판결이 당사자로부터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는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의료소송은 정보의 비대칭성, 무기의 불평등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표적 전문가 소송이다.

환자는 어떤 처치를 받았는지 모른다. 진료정보는 의료인이 작성보관하여 신빙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게다가 의료사고는 폐쇄된 진료실에서 벌어진다. 의료인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작성된 진료기록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도록 당사자신문이 필요하지만 그 기회를 주는 재판부가 거의 없다. 의료인의 기록은 믿을 수 있지만 이해관계자인 환자의 진술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료과가 세분화되어 있어 ‘함지박 돌리기’식 감정기피로 환자는 입증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척추수술 후 뇌염에 이환된 사건에 대하여 정형외과로 진료기록감정을 보내면 내과에 물어보라고 한다. 내과로 감정처를 바꾸면 신경과에 물어보라고 한다. 그 사이 1~2년이 지난다. 신경과로 추가감정을 신청하면 재판부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면서 신청을 기각하고 결심한다.

“진료기록감정 회신이 늦은 것이 환자책임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면 “다른 사건과 형평성이 어긋나서 안된다”고 한다. 항소심에서 신경과로 감정신청을 하면 “왜 1심에서 하지 않았느냐? 새로운 증거신청은 받지 않겠다”고 한다. 민사재판기간을 제한한 법률이 없음에도 재판을 서두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법원은 “지나치게 많은 항소사건으로 인해 법원이 과중한 심리부담과 소송지연을 겪고 있다. 이는 결국 사법불신으로 이어져서, 항소심을 사후심으로 심리해야 한다”고 한다. 법원이 불신을 받으면 변호사는 설 자리를 잃는다. 사법불신은 소송지연보다 졸속재판에 있다. 당사자주의하에서 졸속재판을 피할 1차적 책임은 변호사에게 있다. 항소심을 사후심으로 하려면 최소한 1심에서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판사가 과로사에 이를 정도로 살인적인 사건배당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의료소송을 포함하여 재판의 궁극적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시간적 희생은 감내하여야 한다. 일본은 1974년 발생한 미숙아망막증사건에 대하여 20여년간 심리한 끝에 1995년 파기환송 한 예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판사 수를 대폭 늘려 배당을 줄이는 방법이다. 독일의 2016년 판사정원은 연방법원 456명, 주법원 1만9844명 등 2만300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판사정원법상 3214명에 불과하다. 하나의 사건을 마냥 다룰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평생 유일한 사건이다. 판사 앞에서는 의료사고의 억울함을 풀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가 증거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 높은 상소율로 나타난다. 영국대법관 브렌다 헤일이 2010년 5월 17일자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잘한 판결이라도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옳은 판결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의료판결의 상소율이 낮아질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변호사들이 소송절차에서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입증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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