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해 대부분 기자들이 그래도 자신은 밥값을 내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다른 기자들이 취재원을 만나 밥값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계산하는 자신의 등 뒤에서 “기자한테 이렇게 밥을 다 얻어먹고”라는 감격의 말이 날아들 때 깨달아야 한다. 나는 좀처럼 밥을 사지 않는 인간이라고.

기자들이 밥값을 자주 내지 않게 된 정치, 역사, 심리적 이유가 365개 정도 있다지만 다소 구차해지므로 오늘만 생략한다. 일찍이, 받은 것은 바위에 새기고, 준 것은 모래에 쓰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자신이 밥값 낸 일을 뚜렷이 그리고 자세히도 기억한다. 얼마 전에는 현재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어느 대선후보에게 밥을 샀던 선배의 얘기를 한참이나 들었다.

그러다 한동안 일본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정말 밥값을 많이 냈다. 정확히 얘기하면 장기간 동안 내 밥값을 내가 다 내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더 정확히 하자면, 끼니마다 내 밥값만 내는 일을 계속해서 한 것이다. 돌아가며 사거나 1, 2차를 나눠 내지도 않았다. 내가 시킨 음식 값만 치르기도 하고, 계산기를 두드려 10엔까지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이른바 김영란법이 생겼다. 법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정확하게 적으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다. 내가 취재를 위해 만나는 대부분이 법조인인데 이들은 의식·무의식적으로 법의 테두리를 떠올린다. 머릿속에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선이 있다. 나 역시 10년 넘게 법조기자를 하면서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요즘 내가 밥값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는 모양이다. 쓸쓸하지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주변에서 이전 만큼 밥 먹자는 얘기들을 안 한다. 기자한테 밥값을 물렸다가 두고두고 원한 살 일이 꺼려지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기자들이 만들어낸 365가지 공짜밥 구실 가운데 진짜는 없었던 셈이다.

김영란법 시대의 나는 이렇게 저녁 약속에 임하고 있다. 일본통 박인동 변호사를 만나서는 “와리캉을 하면 도리어 서운하실 테니 3만원만 빼고 내겠다”고 했다. 권오곤 전 ICTY 부소장을 만나서는 안주를 제외하고 술만이라도 모시고 싶다고 했다. 박진식 변호사와는 “책의 독자로서 처음 만난 것이고 언론인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설명에 따라 파스타와 맥주 3잔을 얻어먹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김영란 전 대법관을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의 설명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번 각자 내기를 했다. 서강대학교 정문 앞 곤드레 밥집에서는 6000원과 7000원을 각각 내기도 했다. 끝으로 김 전 대법관 자신은 이 법을 뭐라고 부를까. 답은 “김영란법”이다. 그렇다, 정답은 ‘김영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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