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평가제 시행을 발표하기 하루 전 2015년 10월 20일 밤 11시까지 검사평가표 글자를 하나하나 읽었다. 구체적 예시가 평가항목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수정했다. 이 작업을 한 것은 검사평가제 시행을 주도한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21일 검사평가제 시행을 발표했지만 그때는 법관평가제처럼 성공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법관평가에 대해 법관 출신들이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검사평가는 검사 출신뿐만 아니라 대부분 변호사가 시행을 적극 지지했다는 점을 믿었다.

2015년 12월 31일까지 수행한 형사사건을 대상으로 검사평가표를 작성하기 때문에 평가기간은 두달 남짓이었다. 시행방식은 변협이 검사평가표 및 운영프로그램 제공, 결과 취합 등 통합관리 역할을 하고, 지방회가 독자적으로 평가를 집행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발표 후 곧 전국 14개 지방회에 검사평가표와 검사평가특별위원회규정을 보내고 검사평가제 시행에 협조를 구하였다. 내가 지방회장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설명하고 지방회 차원에서 시행할 것을 부탁했다.

문제는 서울회에서 발생했다. 시행을 발표한 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데도 서울회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직접 김한규 서울회 회장에게 전화했다. 김한규 회장은 법관평가에 집중해야 해서 검사평가까지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검사평가표를 서울회 회원에게 보내는 것은 변협에서 할 테니 나머지 일은 서울회가 처리할 것을 요청했지만 곤란하다는 답을 들었다. 전국 변호사의 70%가 소속된 서울회가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김한규 회장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서울회의 협조를 포기하고 변협이 나서서 서울회 회원을 대상으로 검사평가제를 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서울회가 법관평가를 자체 시행하는 것과는 대비됐다. 다른 지방회가 검사평가제를 자체 시행하는 것과 비교해 보니 허탈했다. 평가기간 두달 중 한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서울회가 거부했으니 다급해졌다. 하는 수 없이 변협이 서울회 회원을 대상으로 검사평가제 시행에 관한 안내문을 이메일과 문자로 보내 본격적인 시행에 착수했다. 시행기간은 1월 중순까지였다. 다행히 서울회 회원들은 처음 시행하는 검사평가제에 적극 협조하였다. 1000건의 평가표를 제출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1079건의 평가표를 받아 안도했다.

제출받은 검사평가표를 보니 많은 변호사가 직접 경험한 생생한 사례와 수사상 문제점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전까지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통로가 없었기 때문인지 검사평가표에는 그간 억눌렸던 변호사들의 검찰 수사와 공판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수사 과정에서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플리바게닝 시도, 고소 취하 종용, 피의자 모욕, 강압적 분위기 조장(책을 책상에 내려치거나 연필을 책상에 던지는 경우 등), 자백 유도 등이 드러났다. 수갑을 채운 채 피의자를 조사하는 등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변호인신문 참여 시 변호사의 메모를 금지하는 등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도 예상외로 많았다. 구체적 사례가 너무 많아 일선 검사의 수사실태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65쪽짜리 ‘2015년 검사평가 사례집’을 만들었다.

2016년 1월 19일 최초로 언론에 검사평가제 시행 결과를 발표했다. “검사에 의한 인권침해, 이제는 근절하라”는 성명서도 발표했다. 평가표가 그리 많지 않아 3건 이상의 평가를 받은 검사를 대상으로 수사와 공판에서 상위검사 각 5인과 하위검사 각 5인을 선정했다. 수사 우수검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변수량, 차상우, 최인상, 장려미, 김정환 검사가, 공판 우수검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채필규, 박하영, 추창현, 김영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오선희 검사가 선정됐다. 수사 하위검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3명,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1명,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1명이었고, 공판 하위검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3명,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 2명이었다. 언론에 상위검사 실명은 공개했으나, 하위검사는 공개하지 않았다. 발표하는 날 사례집을 서울법원청사 기자실에 배포하였는데 사례집이 동나 추가로 배포했다. 언론은 검사의 강압수사 사례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처음 보는 사례가 많아 언론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설도 대부분 검찰에 자성을 촉구했다. 사설 제목은 “검사평가, ‘막말 검사’ 공개까지 가야 한다(동아일보)” “검찰, 변협 평가에 반발하기보다 자성의 계기로(세계일보)” “검사평가제를 검찰 이미지 제고 기회로 삼길(매일경제)” “법관평가와 첫 검사평가, 새겨들을 것은 들어야(연합뉴스)” 등이었다.

나는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검사평가결과를 보내 자질 없는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하고, 검사가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도록 일선 수사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것을 촉구했다. 최초 시행한 검사평가제는 성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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