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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재벌(財閥)과 헌법 제119조의 경제민주화
김남근 변호사  |  droi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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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호] 승인 2017.02.13  1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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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기업집단이나 그들의 독점적 사업행태를 일컫는 용어로는 카르텔, 트러스트, 콘체른(Cartel, Trust, Konzern) 등이 있으나, ‘재벌’은 이러한 전통적인 개념에 포섭되지 않아 영어권 언론에서는 그냥 ‘Chaebol’로 표기한다. 김치와 함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표기된 몇 안 되는 한국어 뿌리의 외래어라고 한다. ‘토요타’도 여러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이지만 자동차 업종에 특화된 콘체른(Konzern)이다.

재벌은 ‘돈 되는 것은 다하는’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특징으로 한다.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은 과거 가전제품에서 시작하여 원자력발전, 항공기엔진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있지만, 특정 일족의 지배에 의하여 운영되지는 않아 재‘벌(閥)’이라 할 수는 없다. 해외의 다른 대기업집단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이러한 특정총수일가 중심의 지배체제와 문어발식 계열사 보유는 한국의 재벌을 특징하는 징표인 셈이다.

게다가 적은 지분의 지배체제를 2세, 3세에 승계까지 하려 하니 이러한 재벌체제는 근대 회사법, 세법, 금융법 등의 체계와 충돌하면서 많은 법적 쟁점을 양산한다.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서 보험, 증권 등 계열 금융회사의 출자나 순환출자, 자회사 외의 자회사-손자-증손회사 체제 등 계열사를 동원한 복잡한 지배방식이 동원된다. 계열사 이사들의 총수일가에 대한 충성도 필수적이다.

재벌체제는 헌법의 이념과도 충돌한다. 통신, 유통, 자동차, 전자제품 등 국민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주요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몇몇 재벌기업의 독과점 체제화 되어 가격과 공급방법, 거래정보제공 등 거래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시장지배적 현상이 생기면서 과도한 통신비 부담 등 시장지배력 남용행위의 폐해도 나타나고 있다.

재벌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면서 중소기업은 경쟁사업자가 되지 못하고 하청·협력업체의 종속적 관계로 편재되고 그 사이에서의 불공정거래 현상도 고착화 되어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현상을 완화시키거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를 철저히 차단하려는 공정거래 규제와 조정행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 단계에서는 주요산업마다 3~4개 재벌대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산업정책은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매우 유용하였다. 재벌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탈법행위에 대해 ‘법 앞에 평등’이라는 숭고한 법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관대한 태도를 취해 온 것도 이러한 재벌체제에 대해 어느 정도 국민적 지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경제체제의 폐해와 비판이 심각하게 부각되고 정부에 경제민주화 행정에 대한 개혁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법 앞의 예외’는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법조인이라면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수없이 되새겼을 ‘법 앞의 평등’의 이념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현학적 문구가 아니라 재벌총수일가에 대한 법적 평가와 처벌에 있어서도 살아 있는 법의 실천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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