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회 회장에 당선되어 사법사상 최초로 법관평가제를 시행하는 행운을 얻었다면, 2015년 1월 12일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장 당선은 사법사상 최초로 검사평가제를 시행하는 또 한번의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2009년 1월 29일 법관평가 결과를 대법원에 접수하고 법관평가제 시행을 마무리한 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되기까지 6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긴 시간 동안 법원을 견제하는 법관평가제가 정착되는 것을 보면서 검찰에 대한 견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과정은 폐쇄적인 데다, 기소독점주의·기소편의주의·검사동일체원칙 등에서 비롯된 검사의 광범위한 기소재량권 남용으로 인해 피의자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나 회유가 있거나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다. 검사평가제를 시행할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나 변호사가 취급하는 민사사건보다 훨씬 적은 수의 형사사건에서, 그것도 폐쇄된 검사실의 수사행태를 보고 검사를 평가하는 것은 공정성 시비를 떠나 평가 참여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2015년 1월 13일 대한변호사협회장 당선증을 받고 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사평가제를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전관예우 척결과 검사평가제 시행을 말했는데, 다음 날 신문은 대부분 검사평가제 시행을 중점적으로 기사화했다. 2월 23일 협회장에 취임한 직후 검사평가TF를 구성해 검사평가제를 시행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법관평가제를 시행한 경험이 있어 검사평가제 시행을 위해 굳이 외국에 가서 자료를 수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계획은 법관평가제처럼 지방회가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협회는 결과를 수집하여 전국적인 평가결과를 산출하거나 발표하는 것이었다. 검사평가를 위한 기준을 설정하고 수사사례를 수집하여 검사평가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2015년 6월 3일 광주회를 방문했을 때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노강규 회장이 광주회 회원을 대상으로 검사평가제 시행에 관한 설문을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90%가 검사평가제 시행을 찬성한다는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대부분 변호사가 검사평가제에 찬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협회가 2015년 6월 3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의 참여권 침해’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도 검찰이 변호인신문 참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나왔다.

같은 해 7월 2일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조사를 받은 김 아무개씨가 다음날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여 협회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 직후 나는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를 만난 자리에서 “왜 검사평가제를 시행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았다. 검찰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변호사가 되어 일선 검사들의 수사를 보니 강압수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검사평가제를 시행하라는 압박이 사방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9월 8일 협회는 김 아무개씨 자살사건에 대한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검찰청에는 직접 감찰을 통해 김 아무개씨의 자살이 강압수사와 인권유린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하여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문책할 것을 촉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검찰수사 과정에 대한 조사권을 즉각 발동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9월 말이 되자 검사평가제 시행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언론은 피의자에 대한 인권 침해 방지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확보를 위해 이르면 10월 검사평가제를 시행한다고 앞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10월이 되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나는 검사평가제 시행에 관한 언론 발표 자료를 준비하여 10월 21일 오전 10시 ‘2015 검사평가제 최초 시행’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협회 대회의실에서 20여명의 기자 앞에 섰다. ‘사법사상 최초 검사평가제 시행’이라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이날부터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를 대상으로 검사평가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성명서, 2종류의 검사평가표, 검사평가제 설명자료, 검사평가특별위원회규정, 광주지방변호사회의 검사평가제 설문조사 결과, 대한변협이 전국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의 참여권 침해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검사평가제 시행 기자간담회 자료’를 배포했다. 이날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최초로 검사평가제를 시행하는 날로 기록됐다.

이후 양일에 걸쳐 인터넷에는 검사평가제 시행에 관한 32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 제목은 “커지는 변호사 파워, 변협 이번엔 ‘검사평가’(서울경제)” “변호사가 담당 사건 검사평가, 검찰 ‘공정성 의문’(한국일보)” “변협 ‘검사평가해 내년 초 명단 공개’ 검찰 발끈(한겨레신문)” “변협 ‘매년 우수검사, 하위검사 뽑겠다(중앙일보)” “법정서 공방 벌여놓고 변호사가 검사 평가한다고?(조선일보)” “변협 ’검사 평가해 명단 공개‘ 검찰 ’수사 독립성 침해 소지‘(동아일보)” “변호사가 담당 사건 검사 점수 매긴다는데(경향신문)” 등이었다. 예상대로 검찰은 변호사가 불리한 처분을 받으면 공정한 평가가 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다음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검사평가제 시행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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