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국민일보 기자들이 파업을 했었다. 월급이 끊긴 우리는 돈이 없었다. MB가 아니라 사주와 대립하는 우린 별 주목도 못 받았다. 노동조합은 ‘일일호프’를 기획했고 조합원들이 티켓을 팔러 다녔다. 경제부에서 증권사들을 출입하던 나는 더욱 많은 티켓을 팔 것이 권장됐다. 얼굴을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어차피 마실 술, 이곳에서 드셔 달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뭘, 얼마를 달라고요? 잘 안 들립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이곳저곳 찾아 무르춤하게 앉아 있다간 짐짓 서로가 비통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티켓 몇장과 흰 봉투를 바꿔 일어서곤 했다. 나는 “고맙습니다. 꼭 와 주세요…”라며 말을 흐릴 뿐이었다. 그러면 한때 취재원이었던 이들이 “부담 없이 말씀하시라”고 했다. 티켓 날짜를 재빨리 훑고는 “그날 실제로 가진 못할 듯하다”는 이들이 더 많았다. 누군가는 “원래 경조사비 명목으로 책정되는 게 있다”고도 했다. 파업 노조의 일일호프란 아무래도 경사보단 흉사이려니, 잠시 생각했다.

이윽고 열린 일일호프는 걱정과 달리 성황이었다. 유명한 정치인들의 얼굴이 보였고, 제가끔 마이크를 잡고 용기를 북돋는 말을 건넸다. 공직자와 법조인들이 방문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노조의 실제 수입은 기업인들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앉아서 마시지도 않았다. 바쁜 틈에 시간을 쪼개 상가에 온 사람처럼 봉투만 놓고 나가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행한 티켓 자체가 좌석보다 많았다. 노조원들이 판 티켓이 등가교환되려면 일일호프를 일주일은 열었어야 할 것이다.

그날 저녁 기업의 홍보인들은 “오늘 장안의 화제는 국민일보 일일호프”라고 트윗 했다. 정의는 승리한다, 언론자유, 해고 무효… 당시 늘어놓은 모금의 목적들에 아름답지 않은 말이 없었지만, 그 트위터가 어딘지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돈 앞에 허리를 깊이 숙였다. “얼마라고요?” 전화기를 붙들고 “상무님, 그러니까 제가 액수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하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점심, 저녁 자리에서 존댓말을 들으며 뭔가를 크게 착각했다 싶었다.

떳떳한 모금에 대한 강박이었을까, 파업이 마무리될 즈음 티켓을 사준 분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 좋은 기자가 되겠다는 낯간지런 말도 있었다. 마음의 빚을 덜고자 하는 일인 셈치곤 자의적이고 간편했던 것 같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이라면 요청과 강요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편지에 쓰인 말대로 살아가는가 돌아보니 아차 싶었다. 내가 부역에 대하여 지껄이는 건 얼마나 옳은가, 가슴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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