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학교에서 시행하는 적성검사를 본 경험이 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직업적성 제1순위로 ‘농부’가 적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미분적분을 즐기며, 분자생물학도의 꿈을 꾸던 내가 농부라니… 내가 농부라니! 의사, 변호사 등의 직업적성 결과를 받은 친구들이 “적성이 의사면 뭐하냐, 의대를 못가는데” 따위의 자조 섞인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아무도 몰래 결과지를 고이 접어 조용히 교과서 사이 어딘가에 찔러 넣고는 두번 다시 그 종이를 펼쳐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변호사가 되어보니 그 시절의 적성검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 일을 하다보면 한달 혹은 하루에도 몇번씩 농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무릇 농사는 자연의 힘과 사람의 힘이 온전한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사람은 농사를 통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존중함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얻을 수 있고, 자연이 주는 열매를 얻음으로써 ‘감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할 것이니, 농사만큼 사람을 완벽하게 해주는 것이 없지 않던가.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풍성하고 달콤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으니 이처럼 ‘노력과 결실’의 순리에 부합하는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가끔씩 너구리나 멧돼지 같은 녀석들이 속을 썩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자만과 야욕의 늪에 빠져 권력을 남용하다가 쇠창살 안에 갇힌 자들에게는 ‘겸손’의 가르침이 필요할 것이고, 법조인맥을 자랑하며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 자에게는 ‘감사’의 가르침이 필요할 것이며, 전문가로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은 채 그저 성공한 변호사가 되고픈 욕심만 가득한 설익은 변호사에게는 ‘노력과 결실’이라는 순리의 가르침이 필요할 것이다.

그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 한 글자 적어본다. 어럴럴럴 상사디 어럴럴럴 상사디 헤헤허여루 상사디여(홍성 모심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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