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9일 오전 법관평가제 시행결과를 발표하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이날 오후 5시 35분 생방송으로 진행된 CBS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에서 진행자는 대법원에 평가결과를 제출했는데 법원 측에선 어떤 반응이 나왔는지 물었고, 다음날인 1월 30일 6시 42분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서는 평가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대법원 반응은 어떠했는지, 법관평가의 객관성,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등에 대해 물었으며, 같은 날 7시 33분에 진행된 BBS ‘김재원의 아침저널’에서는 최악의 판사, 최고의 판사가 누구였는지, 대법원이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하기를 바라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아침 방송 인터뷰를 마치고 이날 나는 퇴임했다.

서울회의 법관평가제가 계속 언론에 보도되자 다른 지방회 회원들이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방회 회장에 출마한 후보들이 법관평가제 실시를 공약으로 걸기 시작했다. 이렇게 당선된 지방회 회장이 법관평가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대구회가 2013년 법관평가제를 실시함으로써 14개 지방회는 전부 법관평가제를 시행하게 됐다. 이제 각 지방회는 자체적으로 법관평가제를 시행해 우수(상위)법관과 하위법관을 선정하고 있으며, 우수법관은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공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자체적으로 법관평가 결과를 활용하고 있고, 해마다 지방법원장이 지방회에 법관평가 결과를 요청하고 있다. 법관평가를 소속 지방법원판사의 평가자료로 참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지방회는 법원장의 인사평정 시기에 맞춰 매년 11월 말 법관평가를 마감해 법원장에게 평가자료를 보내고 12월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법관평가에 대해 비판적인 법원도 일선 판사의 재판실태를 알 수 없어 인사평정에 참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수법관은 언론에 성명, 얼굴이 공개되고 있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재판장들이 법관평가 시즌에 동기 변호사들에게 전화하여 좋게 평가해 달라고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문제는 하위법관이다. 하위법관으로 선정된 판사들은 대부분 불공정한 재판을 하거나 막말을 하고 품위를 상실하여 판사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이런 판사들은 공개해야 마땅하나 해당 판사의 명예에 관한 것이라 아직 그 명단을 공개하는 지방회는 없다. 그러나 부산회의 경우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회원들에게 하위법관 명단을 열람하게 한다. 다른 지방회도 부산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법관평가특별위원회규정을 제정하여 법관평가는 각 지방회가 주관하되 법관평가표를 취합해 평가결과를 기재한 집계표는 협회에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회는 전국 판사의 평가점수와 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부산에서 하위법관으로 평가받고, 서울에서 하위법관으로 평가받은 판사는 2회 연속 하위법관이 되는 것으로 통계를 낼 수 있다.

법관평가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법관평가 결과를 법원 인사에 반영하는 것이다. 하위법관은 재판에서 배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6년 10월 28일 타이베이에 있는 대만변호사회인 중화민국율사공회전국연합회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법관평가 결과를 법원 인사에 반영하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는 제19대 국회에서 함진규 의원이 법관평가 결과를 판사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윤상직 의원이 법관평가 결과를 법원인사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해 법관평가제의 실효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2015년 8월 4일 나는 민일영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을 선출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제시한 3인 중 1인이 탈락하고 그 대신 다른 1인을 후보로 추천하는 과정에서 하위법관에 선정된 지방법원장이 후보로 거론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지방법원장이 하위법관으로 선정된 사실을 말하고 미리 준비해간 선정 당시의 법관평가자료를 후보추천위원들에게 제시했다. 추천위원들은 자료를 보자마자 그 지방법원장을 바로 후보에서 탈락시켰다. 법관평가 자료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2016년 7월 18일에는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을 선출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도 참석했다. 이때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제시한 3인 중에는 하위법관이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에게 하위법관이 대법관 후보 명단에 없는 이유를 묻자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하위법관을 대법관 후보로 하면 변협에서 반대하는데 굳이 하위법관을 대법관 후보로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대법원도 하위법관을 대법관 후보로 올리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이상훈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을 선출하는 절차가 대통령 탄핵 의결로 중단돼 있지만, 절차가 계속되더라도 하위법관은 대법관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다. 많은 지방법원장이 대법관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하위법관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하위법관으로 선정된 법관은 대법관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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