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평가제를 처음 시행하는 데다 시행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법관평가표를 한건이라도 더 접수받는 것이 절실했다.

그래서 시행 기간을 최대한 늘려 집행부 임기 종료 이틀 전인 2009년 1월 28일까지 평가를 독려하며 접수했다. 마감결과 당시 서울회 회원 6272명 중 491명(7.8%)이 참가하여 1039건의 법관평가표를 제출했다. 이 중 비실명으로 평가한 36건을 제외한 1003건을 유효건수로 삼았다. 평가 대상법관은 456명이어서 법관 1인에 대한 평균 응답 건수는 2.2건이었다.

2017년 1월 18일 서울회가 발표한 2016년도 법관평가 결과에는 전체 회원 1만3772명 중 2265명(16.44%)이 참여하여 법관평가표 1만4852건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9년간 회원 수가 2.19배 증가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참여율이 2배 이상 늘었고, 법관평가표는 무려 14배 이상 접수됐으니 최초의 법관평가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평가방법에 있어 법관 1인당 5건 이상의 평가가 된 법관만을 대상으로 했다. 점수제 평가방법을 통해 상·하위법관, 평가부문별 백분위 평가방법을 통해 우수·문제법관을 정하였다.

점수제 평가는 법관평가표의 17개 평가항목을 자질 및 품위(30점), 공정성(30점), 사건처리 태도(40점)로 나누어 배점하고,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채점하여 개인평균 평점으로 순위를 정한 후, 상·하위법관 각 10명을 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상위법관의 최고점은 93.56점, 최저점은 87.66점, 하위법관의 최저점은 45.88점, 최고점은 56.51점이었다. 최상위법관과 최하위법관의 점수차는 47.68점으로 법관 사이의 점수편차가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가부문 백분위 평가는 법관평가표의 평가내용으로 기재된 자질 및 품위, 공정성, 사건처리 태도 3가지로 분류하고, 각 평가내용별로 응답 수 대비 상위평가(A)의 응답률 70% 이상을 평가받은 경우 우수법관, 응답 수 대비 하위평가(D, E)의 응답률 50% 이상을 평가받은 경우 문제법관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자질 및 품위 부문의 우수법관은 6명, 문제법관은 7명, 공정성 부문의 우수법관은 3명, 문제법관은 9명, 사건처리 태도 부문의 우수법관은 4명, 문제법관은 1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법관의 평균점수는 75.4점이었으며, 상위법관과 하위법관은 평가항목을 전부 반영하여 선정하였다. 87점 이상 10명을 상위법관으로, 57점 이하 10명을 하위법관으로 선정하였다.

하위법관 10명의 명단이 드러나자 집행부 임원들은 평소 재판진행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판사들이 하위법관에 대거 선정된 사실을 알고 법관평가결과에 감탄했다. 구체적 사례는 예상대로 당사자는 물론 대리인들에게 고압적인 자세와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아 재판의 품위를 떨어뜨린 경우가 많았다. 상위법관 10명은 평소 재판을 친절하고 공정하게 진행하여 변호사들 사이에서 재판 잘하기로 정평이 난 훌륭한 판사들이었다.

나는 법관평가 발표 며칠 전에 법원행정처장에게 법관평가결과를 전달하겠다며 면담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장은 나의 면담신청을 거절했다. 나는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법관평가결과를 설명하고, 일선 판사의 재판진행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시정을 요구하려 했지만 이런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평가결과를 대법원에 공식적으로 전달할 수 없게 되자 난감했다. 2008년 11월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관평가에 관한 자료를 달라고 했을 때 거부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때 나름대로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렇다면 대법원 민원접수실에 내가 직접 접수하면 될 일 아닌가. 나는 언론에 미리 사상 최초의 법관평가결과를 대법원에 직접 접수한다고 알렸다.

2009년 1월 29일이 되자 나는 상위법관과 하위법관의 실명과 구체적 사례가 기재된 법관평가결과를 들고 대법원 정문을 들어섰다. 이날을 위해 나는 23년을 기다렸다. 이날은 변호사단체 역사에 남을 날이었다. 다음날이면 서울회 회장에서 물러나지만 사실상 근무 마지막 날까지 법관평가 시행을 마치기 위해 대법원 민원접수실의 접수대 앞에 섰다. 김종철 법제이사가 나의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나는 ‘2008년도 법관평가결과’라고 쓴 커다란 봉투를 민원접수실 공무원에게 내밀었다. 순간 방송 기자들은 영상카메라를 작동했고 신문 기자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접수 담당 공무원은 봉투를 받아 접수인을 찍었다. 이로써 사법사상 최초로 시행한 법관평가제가 완결됐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에게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이 법관 승진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법관평가결과가 쌓인다면 인사자료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은 성적 좋은 법관이 아니라 재판을 잘하는 법관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곧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9일 사법역사상 처음 실시한 법관평가결과를 대법원에 제출해 이번 평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어떻게 활용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8년 12월 24일부터 2009년 1월 29일까지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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