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모인 자리에서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종종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소위 ‘악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왜 그들을 변호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론에 의하여 범죄자로 지목되었을 뿐 실제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답변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설명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만인에게 이미 구체적인 악행이 명백하게 밝혀진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왜 그들을 변호하는가에 대한 물음. 누군가를 두둔하려는 생각도, 반대로 비난하려는 생각도 없이 그 역할이 자신이 될 수도 있기에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본다.

필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변호사가 악인의 악행을 덮어주고, 처벌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변호사가 정당한 처벌을 편법적인 방법으로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누구라도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처벌받거나 혹은 행하지도 않은 행위로 처벌 받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들어진 건강한 사회의 안전장치이다. 따라서 자명한 범죄자를 변호하는 것도 누구나 동일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대외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변호사가 자신의 영역 내에서 사회의 안전장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 ‘래리 플린트’에서 래리플린트는 표현의 자유에 한정한 것이기는 하나 ‘나 같은 쓰레기도 법에 의하여 보호된다면, 국민 누구나 법의 보호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래리 플린트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헌법과 인간의 자유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호 받아야만 합니다.’

변호사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변호사의 공익성과 도덕성을 믿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악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특정한 그 한 사람’을 위한 변호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보장 받을 권리’를 위한 변호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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