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평가제를 시행하는 데는 선후배 동료 변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시민들의 성원이 있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법관평가제 시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자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이병호 변호사께서는 2008년 11월 21일 나에게 “방송에 의하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재판에 관하여 법관의 평가를 하는 방도를 강구한다는데 매우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격려를 합니다. 민주적 사법제도와 법치주의의 실현이 시급합니다. 대의를 위하여 꼭 성취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편지를 직접 써서 격려해주셨다. 김선국 변호사(사시 33회)는 정 판사 재판부의 사건을 변론기일 하루 전에 수임하여 변론기일에 소송위임장을 가지고 가서 변론의 기회를 달라고 하였음에도 정 판사는 이를 묵살하고 그날 변론을 종결했는데, 나중에 당사자에게 송달되어 온 판결을 보니 아예 소송대리인 표시마저 누락되어 소송당사자에게 항의를 받았다며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경위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대구의 한 시민은 “주위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일부 법관의 불공정 판결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한 시민들이 상상 외로 많음을 들었다. 실로 약한 시민이 안타깝기 그지없어 제가 겪은 일이 혹 참고되어 법관평가제 도입을 위한 작은 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편지와 함께 조정을 강요한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에게 보낸 ‘문의서’를 보내왔다. 한 아무개 작가는 2008년 12월 26일 “법정에서 구걸하는 변호사의 비열하다 못해 처연한 변론 모습엔 권위적인 판사의 오만과 횡포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사법부를 개혁하고 정화하지 않는 한 법과 원칙은 법전에서 잠자고,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의 억울한 한과 피눈물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번 법관평가제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단순한 독선이 아니라 부패한 사법부를 반면교사로 삼는 자정의 결단이라는 점에서 환영하는 바입니다”라고 쓴 편지를 보내왔다.

법관평가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하기 전인 2008년 12월 15일 평가업무의 방향설정과 계획을 수립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방법의 개발 및 개선을 담당할 ‘법관평가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의 위원장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김정수 변호사(사시 7회), 부위원장은 김선수 변호사, 간사는 김동선 변호사가 맡았으며, 위원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신용간 부회장, 황용환 총무이사, 김종철 법제이사, 박민재 사업이사, 신현호, 심창섭, 허금탁 변호사, 문재완 외대 법대교수, 박경신 고대 법대교수, 신종원 서울 YWCA 부장으로 구성했다.

해가 바뀌어 2009년 1월 2일 전 서울회 회원에게 “법관평가제는 대만에서는 1996년부터,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주체인 법관이 재판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 인품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함으로써, 이는 민주적 사법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이며 사법의 한 축을 담당한 변호사가 헌법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제도”라며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법관평가제에 적극 참여 바란다”는 문서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법관평가표에는 법원과 사건번호, 평가일과 평가자를 적는 ‘수임사건란’과 법관의 소속 법원과 법관명을 적는 ‘평가대상자란’이 들어있었다.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회원들이 직접 수행한 사건만 평가하고 반드시 실명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많은 회원들이 법관평가표에 기재된 자신의 실명이 누설되는 것을 꺼려하여 평가표 작성을 주저했다. 법관평가표를 접수받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실명 보장 문제로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회원들에게 시급히 평가자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해야 했다. 2009년 1월 9일 회원들에게 다시 안내문을 보냈다. 법관평가표가 도착하면 내용을 입력한 후 평가표 중 평가자를 기재하는 실명부분을 절취하여 따로 보관하고, 절취 후에는 누가 평가를 하였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명이 공개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평가표 처리과정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다. 이때가 접수 마감 열흘 전이었다. 그러자 법관평가표가 속속 접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위법관과 하위법관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즉 상위법관은 A등급만으로 선정할 것인지, 등급을 모두 점수화하여 선정할 것인지, 하위법관은 E등급만으로 선정할 것인지, 또 법관 1인에 대한 평가표가 몇건 이상일 경우 평가결과를 집계할 것인지, 평가항목이 누락된 경우 평균수치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평가표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등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하는 수 없이 2009년 1월 10일 나는 황용환 총무이사, 김종철 법제이사와 함께 다시 대북율사공회를 방문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법관평가 접수마감 며칠 전까지 숨가쁜 상황이 계속됐다. 대북율사공회는 친절하게도 법관평가결과인 법관평감보고(法官評鑑報告) 등 관련 자료를 내주면서 상위법관과 하위법관을 선정하는 방법, 유효평가 인정범위, 평가결과를 공표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나는 자료를 챙겨 얼른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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