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돌아왔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건강하게 사무실로 복귀했다. 앞으로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돌보아주실 거라고 한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분이 계시다니 다행이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걱정도 된다. 한편, 시어머니는 무슨 죄냐 하는 생각도 든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상당한 집중력과 체력을 요하는 갓난아이 돌보미 역할을 또 다시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며느리 눈치까지 봐가면서 말이다.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었다. 그렇게 숭고하고 축복받을 일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남자로 태어나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퇴근 후에는 산후조리원에 함께 있었는데,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다.

아들 하나 없이 딸만 연거푸 셋을 낳자, 고개를 들 수 없어 셋째 딸 출산 직후 곧바로 밭에 나가 일을 했던 분이 아주 가까운 주변에 계신다. 그런 몰상식한 시절을 생각하면 그나마 요즘 여성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여하튼 우리는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출산을 통하여 이 땅에 태어났다. 그리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연령대를 주로 어머니의 ‘희생적인’ 돌봄 덕택에 무사히 통과하여 여기까지 왔다. 이것을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후예가 겪는 당연한 고통과 희생이라 치부해서는 안된다.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듯이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개인은 그러한 국가의 노력에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보호받아야 하는 모성에는 미래의 모성도 포함되어야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여성혐오 논쟁을 지켜보며 남자로 태어난 게 죄스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일상에서 겪는 무수한 차별에 대한 대응이 결국 ‘미러링’ 방식으로 폭발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노가 응축되었을지 남자인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대고 ‘미러링’은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비하하고 차별하는 여성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의 어머니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비하하고 차별할 때 다른 누군가가 나의 어머니를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자각해야 한다. 사무실에 복귀한 그녀가 여성혐오에서 자유롭고, 모성 보호를 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나는 어떤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여성혐오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 여성은 어머니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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