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정치적 사찰(査察)과 공작(工作)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 법조인으로서 사법부(司法府)에 대한 내용에는 관심이 가게 된다.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법원 지도층의 現下 communication 강화” 등 특히 사법부를 통제나 길들이기의 대상으로 보는 부분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 판사-재임용 영장고려사유 사회적 제재-보수애국단체 SNS항의 사퇴요구”부분처럼 영장기각 사유를 문제삼아 특정 판사의 재임용을 막으려 한 내용도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은 권력을 나누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전제군주의 출현을 막고자 하는 현대 헌법의 기본원리인데, 행정부 수반이 있는 청와대가 사법부와 판사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려고 했다면 그것은 민주공화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국정조사에서는 국정원이 대법원장을 사찰한 문서가 있다는 세계일보 사장의 증언이 있었다. 사실이라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비망록에도 국정원이 등장한다. 경찰과 국정원이 팀을 구성하여 문제언론에 대해 “리스트(List)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신부(神斧) 뒷조사”를 하라는 메모가 있다.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호하는 국민의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여론의 형성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기제이다. 국정원이 정보수집의 미명하에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종교인, 심지어 대법원장과 판사 등에 대한 사찰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법치행정의 영역을 벗어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린하는 위헌적인 행위이다.

비망록(備忘錄)은 어떤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적어둔 기록을 말한다.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이나 수석회의 논의내용을 일자별로 메모해 둔 것은 나중에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인의 비망록을 세상에 알리기로 한 결정에는 민정수석에서 억울하게 물러난 고인의 한을 풀려는 해원(解寃)의 점도 있었겠지만, 그 내용에 비추어 우리 정치문화에 깔려있는 불법행정에 대한 경종(警鐘)을 울려야 하겠다는 뜻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임금의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는 문서를 비망기(備忘記)라 하였는데, 영조 즉위부터 다음해까지의 사실을 승정원에서 기록한 비망기가 남아 있다. 이는 영조의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진 당시 남인과 노론 사이의 치열한 정국대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핵심권력부에서 작성된 비망록은 때로는 당시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 역사적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위로부터 불법행정이 만연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처럼 누구나 상식적으로 불법행위라고 알고 있는 위법한 지시에도 말없이 복종하는 충성문화가 만들어지고, 급기야 비선실세와 같은 행정조직 밖의 세력에 의해 국정이 농단당하는 상황에서도 청와대 비서실이나 행정조직이 침묵하는 법치주의의 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후대에 교훈으로 남겨야 할 우리시대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특검의 수사뿐만 아니라, 진상을 조사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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