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8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최초로 법관평가제를 기사화하자 법조계는 물론 언론도 찬반양론으로 대립했다. 이틀 후인 2008년 11월 20일자 국민일보 사설은 “법관평가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라는 제목으로 법관평가제가 재판의 독립성을 해할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지만 사법개혁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반대만 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재판의 공정성과 변론권 확보를 위해 법관평가제가 필요하다는 변호사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관평가제는 적어도 법관이 독선적 권위와 독단에서 벗어날 공정 판결을 촉진한다는 긍정적인 취지에서 출발한다. 국민이 바라는 바다”라며 찬성했다.

찬반 시비가 팽팽하자 한 언론이 전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발표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CBS가 2008년 11월 1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법관평가제에 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도입 찬성 의견이 49.4%, 도입 반대 13.4%로 나타났다.

도입 찬성은 지지 정당을 불문하고 긍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는데 특히 민주당 지지층이 57.9%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자유선진당(52.5%), 친박연대(50.7%), 한나라당(50.1%) 순으로 찬성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 성별로는 남성(57.6%)이 여성(40.9%)에 비해 찬성 의견이 높았고 연령별로는 20대(59.6%)를 비롯해 40대(55.1%), 30대(44.4%), 50대 이상(42.7%) 순으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났다.

법관평가가 공정할 수 없다며 심하게 반발한 법원은 내부에서 부장판사가 찬성하는 글을 게재하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한호형 부장판사가 2008년 11월 26일자 동아일보(A10면)에 “법관에 대한 신뢰는 재판 당사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재판과 무관한 일반 국민의 평가에 좌우될 일이 아니다. 사실을 직접 경험했던 당사자와 지속적으로 소송의 대부분을 수행하고 심판을 받는 처지에 있는 변호사의 의견은 어떤 형태로든 법관 인사 등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당사자를 포함해 많은 변호사로 하여금 실명으로 잘잘못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의견을 제출하게 해 사실 확인을 하고 왜곡된 의견을 제거한 다음 이를 집계 비교 분석한 결과를 제도적으로 반영한다면, 이는 확실한 평가 자료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법조 영역에서의 불신을 해소하고 사법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찬성하는 글을 게재하자 법원은 여론에 밀렸다.

여기서 법원은 편법을 제시하여 법관평가제를 막으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법원행정처가 2010년부터 판사 선발 때 ‘인성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법원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법관을 임용해 왔으며, 인성평가는 주요 평가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부적법한 언행을 하거나 법에 어긋나더라도 자기 소신대로 판결하는 판사들이 늘면서 법관 인성평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점을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법관의 불공정한 재판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법관들의 공정성과 자질을 점수화하는 법관평가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한 대응책으로 보았다.

그런데 정 판사는 한 언론에 자신의 재판이 불공정했다고 밝혀지면 사직할 것이라고 공언해 파장이 일었다. 이와 더불어 정 판사는 “만일 자신의 재판 진행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법원의 위신과 재판의 신뢰성을 손상시킨 홍 아무개 변호사와 서울지방변호사회 하창우 회장을 징계해달라”며 대한변호사협회에 진정했다. 법관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이 변협에 진정을 당한 셈이었다. 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정서 내용을 볼 때 변호사 시각에서 재판 진행이 불공정했다고 판단했지만, 재판장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하면서 “법관이 특정 사건의 재판진행이 공정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변호사단체에 요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법관평가제에 관한 자료가 없었던 대한변호사협회도 현직 부장판사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진정하자 난감했다.

그 후에도 법원의 반발이 계속되자, 나는 법관평가제를 실시할 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변호사단체 내부에서도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는 말도 나왔고, 어떤 변호사들은 법관평가제를 실시한다면 내가 두고두고 재판 때 불이익을 받을 것인데 왜 굳이 실시하려고 하느냐고 말렸다.

누구도 나에게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관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지 한달이 넘자 실행 여부를 결단해야 했다. 계속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법관평가를 하기 위해 22년을 기다려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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