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바다’이고 국회는 ‘섬’이다. 바다에 섬이 없다면 척박하고 적막하다. 섬에 바다가 없다면 홀연하고 허무하다.

국민은 다양한 것을 품는 웅혼한 바다다. 국회는 누구나 거쳐 가는 섬이다. 이처럼 국회는 국민이라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국민의 눈·코·귀·입과 손발이 되기를 자처한다.

평소에 바다는 거대하고 심오하다. 또 고요한 듯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변화를 원하고자 할 때 바다는 큰 파도(與論)를 일으켜 섬을 요동치게 한다. 이제 바다가 파도를 섬에 전달했을 때, 여론을 품게 된 국회는 같이 요동치기 마련이다.

올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풍랑과 너울이 많았다. 국정농단, 헌법유린, 민주주의 등의 말이 국민 누구에게서나 입으로 전해졌던 때였다.

그에 따라 예산안 심사과정에서도 몇몇 부처는 특정인, 특정대상과 관련한 사업이 상당부분 삭감되었다. ‘창조경제’, ‘문화융성’, ‘청년일자리’ 등의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법안은 또 어떤가. 정권 초기 교육·금융·노동·공공 등 4대 부문의 개혁 입법들은 꾸준히 논의가 진전되었지만, 앞으로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는 국회를 거치면서 ‘예산’과 ‘입법’ 모두에서 사실상 실패했다. 새해에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어떤 국정을 펼쳐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연말에 국회가 야심차게 준비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활동은 국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대변했다. 특히 청문회는 그 동안 권력의 최고위층에서 청와대, 행정부나 재벌(대기업) 등이 지속적으로 공조했던 ‘검은 거래(결탁·담합)’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수 십년 전부터 공개적으로는 금지된 정경유착이라는 악(惡)이 사회의 최고위층에 잔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국회는 부족하게나마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국회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뜻을 시시각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고 상당한 권력과 재원을 행사하는 ‘행정’·‘사법’을 견제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에는 새로이 시작하고자 하는 희망이 가득하다. 올해 국민은 연초부터 전관예우 사건, 현직 판·검사비리 사건에 놀랐고 고위공직자의 ‘개·돼지’ 소리에 화가 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실망과 개탄을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 거리로 나왔고 인터넷에는 수많은 댓글이 홍수를 이루었다. 물론 국민은 국회에도 할 말이 많았다. 몇몇 의원의 비위가 검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고, 고성과 호통으로 얼룩진 국정감사·조사나 부정한 쪽지예산 등의 사례가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다.

새해 아침, 바다에는 새로운 해가 뜬다. 고요한 바다는 온화한 은파를 드리운다. 하지만 파도는 쉴 새가 없다. 작든 크든, 파도는 섬에 계속 부딪히며 부서지고 다시금 밀려든다. 국민의 함성은 국회로 밀려들 것이기에 국회가 게으를 수 없다. 내년에는 꼭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바라는 국민의 질정(叱正)이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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