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이 ‘평가’라는 칼을 휘둘러 큰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자칫 유능한 법관이 마녀사냥에 걸려 매장될 위험도 적지 않다. 법관의 잣대를 빼앗아 보겠다는 시도로 비쳐진다.” 2008년 12월 26일 서울 어느 중앙일간지 사설은 법관평가제에 대해 재판 독립성을 흔들려는 것이므로 철회해야 한다는 글을 실었다. 법관평가제를 실시할 당시 언론의 입장이 이 정도이니 법원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법관평가제는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에서 실시돼 전국의 변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 공정성 시비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법관평가제는 법관의 독선적 권위와 독단에서 벗어나게 하고 공정한 판결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관평가제가 이렇게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기 시행단계의 시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법관평가제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나는 그 히스토리를 우리의 후대에 남겨주고자 한다.

나는 사법연수원을 15기로 수료하고 1986년 3월 변호사개업을 했다. 당시 법정에 나가보면 변호사들은 대부분 판사와 검사 출신이었다. 현직 경험 없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론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그런데 나는 당시 법정에서 이상한 광경을 여러번 목격했다. 젊은 판사가 법대에 앉아 법대 아래에 있는 머리가 하얀 선배 변호사에게 핀잔을 주거나 때로는 반말을 해도 변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와 같은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에게는 “연수원에서 뭘 배웠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많은 변호사들이 얼굴 붉어지는 모욕을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또 재판장과 친한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재판진행에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연수원 출신 젊은 변호사들은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 항의라도 했다가는 판결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나의 동기 정 아무개 변호사가 법률신문에 “병아리도 품어 달라”는 글을 쓰기도 했을까.

많은 변호사들이 판사들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도 이의 한번 못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게 보였다. 이런 비민주적인 법정 모습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 것인가.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1997년부터 4년 동안 서울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로 일하면서 동기와 주위 변호사들로부터 판사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은 법정 경험이어서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2001년과 2005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로 일하면서 판사의 독선을 바로 잡을 방법이 없을까 내내 생각했다. 2005년 나는 어느 변호사로부터 외국에 법관을 평가하는 제도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법관을 변호사가 평가하다니. 당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도전해 볼 만한 일이었다.

2007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이 되자 드디어 법관평가제를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변호사생활 20년 만에 실행할 수 있는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외국의 정보와 자료를 입수하기 시작했다. 외부에 알려질 경우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이 예상되어 철저히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대만에서 법관평가를 실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대만과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교류가 단절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대북율사공회에 연락하여 교류를 요청했다. 어떤 식으로든 법관 평가를 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2008년 교류가 이루어져 대북율사공회에 갔더니 정말 법관평가를 실시하고 있었고 평가 초기에 하위법관을 실명으로 공표했다 해당 법관이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한 관련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변호사들이 기소돼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일화까지 들려주었다. 우리는 법관평가에 관해 자세히 설명듣고 평가방법에 관한 자료를 챙겨 귀국했다. 일본은 지방변호사회별로 실시하고 있고, 실시하지 않는 지방변호사회 변호사들에게는 최고재판소에서 평가자료를 보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미국 텍사스 주는 법관평가에 현직 검사도 변호사의 자격으로 참가하며, 판사가 열심히 일하는가, 공정하게 재판하는가, 판사가 충분한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등이 평가항목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 법관평가를 실시할 준비는 끝났다. 그러나 막강한 사법부 앞에 무턱대고 법관평가를 실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할 사건이라도 생긴다면 법관평가를 할 명분이라도 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시행할 일은 아니었다. 2008년 9월 말경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도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어 법관평가자료를 보따리에 쌌다. 혹여 내가 대한변호사협회 일을 맡는다면 그 때 실시해 봐야겠다는 심정이었다. 법관평가 시행이 나의 목표였는데 시행도 못하고 자료를 보따리에 싸는 심정은 착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2008년 10월 중순경 사법연수원 36기 홍 아무개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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