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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통 큰 회장님’과 ‘청탁금지법’
권오혁 동아일보 기자  |  ohhyuk10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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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호] 승인 2016.12.12  1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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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의 시행은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취재원들과의 식사 및 술자리는 간소해졌고 기자들의 편의를 봐주던 일부 관행들도 사라졌다.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변화의 바람은 사회 곳곳에서 시나브로 번져가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3주 넘게 ‘엘시티 로비 의혹’ 관련 취재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청탁금지법이 있었다면 지금의 엘시티는 존재했을까?”

부산 엘시티 시행사의 실소유자인 이영복 회장은 건설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이자 ‘로비의 귀재’로 불린다. 이 회장을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이 회장을 ‘사업 수완 좋고 통이 큰 회장님’으로 평가했다. 엘시티 관련 보도에서는 주로 이 회장의 정·관계 유력 인사 로비에 주목하고 있지만 실제 이 회장의 로비 방식은 오랜 시간에 걸친 저인망식 전방위 로비다. 지역에선 “이 회장은 스쳐만 지나가도 수백만원이 담긴 봉투를 주고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만큼 로비 대상은 지위 고하를 막론했으며 퇴직 공직자까지 챙길 만큼 ‘자기 사람’에게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의혹의 대상이 된 정·관계 인사들이 술·골프 접대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 회장과 친분이 있고 함께 어울린 것은 사실이나 고액의 돈을 받거나 그에 대한 대가로 부정한 청탁을 한 적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이 회장이 1990년대말 부산 다대·만덕지구 택지 전환 사건 때 정·관계 로비설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만남을 단순 친목 목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 사업가들의 술·골프 접대는 공공연히 이뤄졌다. 부산 지역에서 이 회장의 술·골프 접대 대상으로만 수백명, 수천명이 거론된다. 이 회장과 친분이 있는 몇몇 전·현직 공직자와 언론인은 엘시티 아파트를 특혜 분양받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 회장의 측근 중에는 지방법원장 출신 변호사,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등 법조계 출신도 여럿 눈에 띈다. 이들은 현직 시절부터 친분을 쌓다가 변호사 개업 이후 민·형사상으로 이 회장의 ‘방패막이’ 역할도 해줬다.

시작은 일상적인 술자리와 골프 모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누적돼 어느 순간 마음의 빚이 되고 부지불식간에 범죄의 방조자이자 공범이 되기도 한다. 이 회장은 사업가다. 함께 한 술과 골프는 공짜로 받은 ‘정’이 아니라 ‘빚’이다. ‘통 큰 회장님’ ‘자물쇠 입’의 이미지도 결국은 동조자들이 만든 허상에 가깝다. 애초에 청탁금지법이 있었다면 ‘성공한 사업가’ 이영복도, 지금의 엘시티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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