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단, 즉 용단(壟斷)은 춘추전국시대 임금이 나라의 경영을 위하여 마련해 놓은 벼슬자리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 뒤 위정자들이 벼슬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독차지하는 행태를 비난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최근 최태민·최순실 모녀가 국정(國政)을 ‘농단’하여 얻은 수익이 3000억원이 넘는다고 하여 국회에서는 국정농단자의 불법재산을 환수하는 특별법이 추진되고 있다. 대규모 범죄수익의 환수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범죄수익환수를 위한 특별법이 추진된 바 있다. 검찰은 유병언 일가에 대한 형사소추를 추진하면서 ‘기소 전 추징보전’을 통해 1054억원의 재산을 동결하였으나 유병언의 사망으로 형사판결을 받지 않아 범죄수익 환수에 실패하였다. 재벌총수들이 계열사를 동원하여 전환사채(CB)를 재벌 상속인들에게 저가 발행하여 그룹의 지배권을 편법 상속하려 한 사건에서도 이사들은 배임죄로 처벌받았지만 상속인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 그들이 취득한 불법재산은 환수되지 못했다.

특정사건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한국의 범죄수익 환수율은 매우 낮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2015년 6월 현재 추징건수 2만2485건, 금액으로 25조5538억원이 환수되지 않아 미환수율이 99.72%에 달한다고 한다.

범죄수익 환수제도는 국제적 공조로 추진되고 있다. 1988년 불법수익의 추적·환수를 위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1989년 국제 자금세탁방지구인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이 설립되었다. 2003년 UN부패방지협약과 FATF가 각국에 도입을 권고하고 있는 범죄수익 환수제도가 ‘민사 몰수·추징 제도’이다. 형사상 몰수·추징 제도는 부가형이어서 범죄자가 유죄판결을 받지 않으면 그 범죄의 대가로 얻은 재산이나 수익에 대한 몰수·추징을 할 수 없고, 불법재산이라는 점을 알면서 취득한 제3자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절차도 진행할 수 없다. 민사상 몰수·추징 제도는 범죄자가 사망, 공소시효 완성, 해외도주 등으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 범죄의 대가로 얻은 재산에 대해서는 민사절차를 통해 국가가 환수하는 제도이다.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는 이미 도입되어 있고, EU도 각국에 지침(Directive)을 통해 민사몰수제도의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국에 도피시킨 2870만 달러의 재산을 한국정부에 돌려주기 위해 진행한 범죄수익 환수절차도 민사몰수제도이다.

형사정책적 측면에서도 범죄수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않으면 엄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중대범죄를 저지를 경제적 유인이 존재하게 된다. 범죄수익의 환수는 우리 사회에 법의 정의가 살아 있고 법치국가원리에 의하여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본지표의 하나이다. 일제 강점기 국정을 농단하여 개인의 부를 축적하였던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우리 시대에 뒤늦게나마 제정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미 형법 외에 5개의 범죄수익환수 특별법이 있는데, 또 다른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보다 이번에야말로 민사몰수제도를 포함하여 체계적인 범죄수익환수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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