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박대통령 퇴진의 촛불시위로 한국사회가 경천동지의 혼란에 빠져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기원전 2~3세기에 중원땅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면서 정립되어 있던 6국을 멸망, 중국전국토를 사상처음 통일을 이루며 왕이 아닌 황제로 등극한 진시황의 이야기이다.

그가 아방궁과 만리장성을 짓고 자기가 묻힐 여산능(토용총)까지 마련하며 생로병사의 인생의 한계까지 극복해보려 시도한 것은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다. 불로초(不老草)가 그것인데, 동남, 동녀 각 3000명씩 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배에 타고 동쪽의 신비의 나라(제주도라는 설도 있음)에 찾아가 불로초를 들고 있는 신선에게 청탁, 얻어오게 하는 일이였다. 이 계획을 건의한 자는 서복이었는데, 건의대로 동남동녀를 선발하여 그와 함께 동방행의 배를 태워 보냈지만, 기다리는 불로초는 오지 않은 채 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중 서복이가 허탕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져 수색 끝에 그를 잡아들여 희대의 사기꾼이라 하여 진시황은 단칼로 단죄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잡혀온 서복은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나 ‘폐하께서 저를 죽이기 전에 한 말씀만 드릴 기회를 주십사’고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분노한 진시황은 들었던 칼을 놓고 일단 서복의 말을 들어보았는데, 그의 변명은 동방행의 항로에서 목을 지키던 큰 물고기가 통과세를 요구함에 미쳐 준비한 예물이 없어 보아달라고 애원했으나 이 물고기가 화가나서 동남동녀의 배를 뒤집어 모두 수장되고 자신만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죽어도 좋으니 다음 동남동녀를 보낼 때는 반드시 바다의 큰 물고기의 예물을 준비하여 가는 것이 좋겠다고 부언하였다는 것이다. 죄지은 자에게도 단죄하기에 앞서 반론권을 인정하였던 옛고사이다.

예부터 ‘한쪽말만 듣고 송사하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서도 송사에서 성의있게 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하였다(聽訟之本 在於誠意). ‘한쪽말만 듣고 상대방의 말은 들어보나마나 뻔하다’고 선입관을 갖고 성의없이 재판하여서는 안된다는 말로 풀이된다. 독일기본법 제103조 제1항은 “재판에 있어서는 누구나 법률상의 심문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하여, 검사나 원고만이 아니라 피고인이나 피고에게 심문권을 인정한다. 미국연방헌법 제14조 제1항은 “국가라 하여도 법의 적법절차 없이 어느 개인의 생명, 자유나 재산을 박탈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의 적법절차는 듣게 할 기회(opportunity to be heard)의 제공을 의미한다. 우리헌법 제11조의 ‘법앞의 평등’은 법관 앞의 평등을 말하는 것으로, 청구인만이 아니라 소추당하는 피청구인에게도 자기의 입장을 진술하고 증거댈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여야 함을 뜻한다.

목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절차에 회부될 상황인데 꼭 그렇게 간다면 유의할 것이 있다. 대통령에 탄핵절차란 위법행위의 공무원에 징계절차와 맥을 같이한다. 국가공무위법상 징계위원회의 의결에 앞서 징계대상자의 진술권보장인 청문절차를 거치게 되어있다. 하물며 국민의 다수표로 당선된 대통령을 징계하는 탄핵절차에서 공정하고 충분한 절차권보장없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졸속의 결론을 내린다면 사법적 정의는 실종이요, 법치주의는 조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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