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봄 중년 여인이 찾아왔다. 그동안 길러온 딸의 DNA검사결과, 딸이 친자가 아니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17년 전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을 하고 3일 만에 딸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젖을 물릴 때의 행복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유독 병치레가 잦아 애를 태우던 딸이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골수이식을 위하여 유전자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부부가 낳은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낳은 부모를 찾아야 골수이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을 듣고 출산한 대학병원을 찾아갔으나, “의료법상 진료기록을 내줄 의무가 없다”고 거부당했다(환자의 진료기록열람복사청구권은 2000년 7월 이후 인정되었다). 의료소송을 통해 진료기록제출명령신청을 하려니 소멸시효 10년이 넘어서 이것도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가정법원에 딸을 상대로 친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송을 제기하여 진료기록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받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장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 심한 질책을 하였다. “17년간 기른 딸을 버리려하는 부모나 그 사건을 맡은 변호사나 모두 비윤리적이다”라는 것이다. “출산기록만 받으면 소를 취하하겠다”고 사정한 후에 겨우 문서송부결정을 받았다. 다행히 대학병원은 환자비밀유지의무를 포기한 채 20여명분의 출산기록을 법원에 제출해 주었고, 이를 토대로 우여곡절 끝에 낳은 딸을 찾아냈다.

딸을 길러 준 부모와 함께 대학병원에 가서 바뀐 경위를 물으니, “손목에 채워둔 밴드를 목욕시킬 때 풀었다가 다시 채우는 과정에서 바뀐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 주치의는 “분만 이후는 소아과에 책임이 있다”고 변명하였다. 소아과 교수는 “신생아 담당간호사들이 바꾸었으니 의사가 책임질 사항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간호부장은 “간호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아 업무과다로 발생한 일이다”라며 경영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병원장은 “나는 임기제 병원장에 불과하다. 소멸시효가 경과하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해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청구시효는 지났으나 소멸시효남용론을 근거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위자료는 인정하였으나, 일본, 미국 등의 유사소송에서 인정되었던 광고비와 수색인력 고용비 등 친자수색비, 개인 및 가족집단 정신치료비, 가족여행, 식사비 등 가족관계 회복비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손해배상의 기본원리는 처음과 같이 돌리는 데 있다. 외국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을 ‘가족해체’ 심지어는 ‘가족사(家族死)’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가족관계의 회복에 필요한 이사비용까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생아관리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다. 신생아에게 풀 수 있는 손목시계형에서 한번 채우면 풀 수 없는 밴드형태로 신생아식별기구를 만들었다. 밴드색깔도 여아는 핑크색, 남아는 스카이블루색으로 나누어 구별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아이가 뒤바뀌는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제도나 기구의 개선보다는 의료인들의 주의와 관심이 더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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