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군부독재 시절 이후 30년 만에 시국선언을 했다. 변협은 앞서 지난달, 대통령은 국기문란의 실체를 밝히고 특검은 조속히 수사를 착수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 시국선언에서는 더 나아가 대통령의 자진퇴진과 국회의 조속한 탄핵 발의, 검찰 및 특검의 성역 없는 수사를 강하게 요청했다. 1987년의 ‘4·13 호헌조치 반대성명’에 버금가는 중대하고 역사적인 시국선언이다.

선언문에 명시된 바대로 대통령은 이제 그 자리에 설 이유를 상실했다.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헌정문란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반복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말을 거듭하며 국민을 절망과 허탈의 나락에 빠뜨렸다. 대통령 본인이 정당성을 부여한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을 운운하고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사상누각”이라며 맞서는 비루한 모습에 국민은 할 말을 잃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국회와 수사당국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며 한달여 시간을 허비한 채 이제야 탄핵절차를 준비 중이다. 최초 국기문란 행위가 드러났을 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재빨리 움직였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초기 늦장수사 및 봐주기수사 행태를 보이며 또 한번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지난 20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검찰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매주 추운 광장에 나와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수백만의 촛불은 우리나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초래한 무능력한 정부와 무책임한 사정기관, 국회 모두를 향한 범국민적 분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국민을 개돼지라 칭하고 바람이 불면 꺼지는 촛불로 비하하는 나라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지난 5주간 광장에서 드러난 민심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 대통령은 존재이유가 없다.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알며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은 하루빨리 이러한 민심을 깨닫고 지체 없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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