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하면 온 나라가 들뜨던 시대가 있었다. 쌀 농사가 풍작이라는 말은 곧 국운 융성의 상서로운 징표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쌀 농사가 잘 되었다는 말이 재앙의 전조가 되었다. 농민은 쌀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본다고 아우성치고, 정부는 직불금, 쌀 재고 관리로 혈세가 든다고 울상이다. 이젠 그 누구도 ‘황금빛 가을 들녘’을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불행의 씨앗은 1994년 체결된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때 뿌려졌다. 공산품 수출을 위하여 농산물 시장을 개방, 쌀을 수입해야 했다.

올해 쌀 예상 수확량은 420만톤 가량으로 적정 수요치보다 30만톤 가량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만톤 가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당연히 쌀값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20년 전의 쌀값을 현재와 비교해 보면 쉽다. 1996년 80kg당 산지 쌀값이 13만7990원이었는데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1월 5일 현재 쌀값은 12만9348원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다른 생필품 가격과 비교하면 심각성이 드러난다. 라면 값은 1995년 300원에서 2015년 760원으로, 자장면 값은 평균 2176원에서 4591원으로 각각 153%, 111% 올랐다. 같은 기간 담뱃값은 900원에서 4500원으로 무려 400% 올랐다. 나라 주식인 쌀값이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농민의 피와 땀도 푸대접이다. 한해 농산물매출 1000만원 이하의 농민 45.2%가 쌀 농사를 짓고 있다. 2014년 쌀 조수입은 평균 637만3000원으로, 월 평균 53만원 수준이다. 최저 임금의 절반에 못 미치는 소득을 얻고 있는 셈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거늘 이것이 우리 농업의 현실이다.

지난해 이맘때 고(故)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 대포에 쓰러진 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농민단체와 농민들이 주장한 내용을 보면 ‘밥쌀 수입저지, TPP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가격 보장’이었다. 언론은 농민 데모를 가리켜 “농민들이 아스팔트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표현한다. 오죽하면 생업을 포기하고 길거리의 농성을 택하겠는가, 안타깝다.

얼마 전 변호사들이 행정사법 개정 문제로 거리로 나서는 일이 있었다. 변호사 업계도 내우외환이다. 밖으로는 변호사의 고유 영역을 넘보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안으로는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경쟁이 극에 달했다. 변호사의 월 평균 수임건수는 2004년 약 5.08건에서 올 상반기 1.69건으로 급감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으나 그 사이 수임 단가도 급격히 떨어졌으리라.

경력 변호사들의 증언을 들으면 수임 사건의 평균적인 기본착수금은 20년 전과 비슷하거나 더 낮다고 한다. 쌀값 떨어지듯 변호사 수임료도 떨어진 것이다. 변호사도 푸대접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무실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줄기차게 상승하건만 수임사건과 수임료는 대로변 싱크홀처럼 푹 꺼지는 현실은 우리 법조시장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성실한 법률 조력을 기대하는 의뢰인의 신뢰와 변호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 아스팔트 모퉁이에 서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은 어깨 처진 변호사가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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