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 예산’. 국가의 주머니를 합리적인 배분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예산일진대, 쪽지예산이라니…. 국가의 주머니를 희구하는 사람들이 그 주머니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테니까 이해는 간다. 특정 부처·사업·지역·집단에 이익이 된다면 막판에 동료 의원들에게까지 쪽지를 사용해서라도 ‘뭔가’ 해보려는 심산일 게다.

예산(일반회계, 특별회계)안과 기금운용계획안을 포함하는 ‘예산안(豫算案)’은 국회로 잘 넘어왔다. 헌법에서 정한대로 국회에서는 심의·확정을 해주면 모든 과정은 끝난다. 그런데 이건 간단하지 않다. 이번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안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각 부처의 예산안은 관련 상임위원회가 그 예산안을 먼저 심사한다(문화체육관광부→교문위, 고용노동부→환노위 등등). 그 예산안은 변동이 생기게 마련인데 감액·증액의 과정에서 국회가 정부부처 등과 지리한 공방을 벌이게 마련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게 한번씩 다듬어진 예산안은 이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겨져 다시 심사를 받는다. 흔히 예산판에서는 “죽었다가 살아오기는 어렵다”는 속언(俗言)이 전해진다. 상임위에서 ‘전액삭감’된 경우라면 예결위에서 ‘전수회복’되는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때론 일부감액의 경우도 예결위에서 다시 증액시켜주는 경우가 드물다.

특별한 것은 예결위에서도 각 부처(분야)별로 심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런 혹독한 심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계수조정소위원회(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가 전체 세입을 고려해서 세출 예산안을 다시금 짜게 마련이다. 계수조정소위는 감액심사와 증액심사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체 예산의 틀에서 나름의 ‘공간(Capacity)’을 찾으려 한다. 즉 예결위가 감액을 확보한 사업들이 많을수록 무수한 증액요구를 어느 정도 보전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엄청난 권력이다. 이쯤 되면 온 부처·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국고·재정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도 전폭적인 활동에 나선다. 예산안의 삭감은 예산을 배분하는 기재부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예산실도 먼 산 불 보듯 할 수가 없다.

예산안 심사가 가장 치열해지는 순간은 계수조정소위에서 증액심사가 이루어지는 때다. 특정 지역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변고(가축역병, 풍수해, 지진 등)가 발생할 경우 계수조정위에서 특별한 배려를 받기도 하는데, 그것을 선해하면 민주적인 기능에 따라 배분적 정의가 실현되는 때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액이 심의·확정되는 것은 큰 이해관계가 얽히는 것이기 때문에, ‘비공개로 호텔 밀실에서 결판난다’는 풍문(?)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제 예결위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 예산안은 법정시한인 12월 2일까지 본회의를 통과한다. 얼마 전까지 예산안은 연말 심야가 되어야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요즘은 법정시한이 다행히(?) 잘 지켜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부자는 돈이 얼마가 모이고 돈을 얼마나 써야 할 것인지, 결단을 내렸다. 올해도 예산전쟁은 수많은 말들과 오해들을 남기고 끝났다. 결국 승자, 패자도 없었던 셈이었다. 내년에도 예산전쟁이 시작될 것을 기약하면서, 대한민국 으뜸 부자의 모든 돈은 내년 1월 1일부터 아낌없이 쓰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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