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버스타기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스타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서서히 지나가다 속도를 내며 스쳐가는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그 풍경 속엔 뭔가 근사한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영사기가 쏘아낸 빛이 극장 안을 떠다니는 먼지를 비추는 것을 올려다 볼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아내는 여행을 좋아한다.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제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내가 해야할 일들을 우선순위로 올려놓았기에 여행은 다음으로 밀려났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여행지의 낯선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낯선 풍경 속에 나를 놓아버리면 내가 그간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고 있었는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

지난 10월에 아내와 피렌체에 다녀왔다. 블로그에서 피렌체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지붕 위에 올라가서 두오모는 어디있냐고, 두오모가 왜 안보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자기의 위치에서 벗어나야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여행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빔 벤더스와 페터 한트케가 함께 시나리오를 쓴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페터 한트케의 ‘유년기의 노래’라는 시로 시작하여 반복하여 이 시를 들려준다. “(…)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지나치게 성실하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일을 너무 열심히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인과촌장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흥얼거린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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