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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현대라는 시간과 일본이라는 공간
야마구치 스스무 아사히신문 오피니언 편집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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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승인 2016.11.28  10: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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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2013년 일본에서 발표돼 베스트셀러가 됐던 이즈미 도쿠지 전 최고재판소 재판관의 저서 ‘나의 최고재판소론-헌법이 요구하는 사법의 역할(私の最高裁判所論 : 憲法の求める司法の役割)’이 번역 출판됐다. 한국어판은 ‘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소수자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헌법이야기’이다. 올해 11월로 공포 70주년을 맞는 일본국헌법과 최고재판소에 대한 전직 최고재판소 재판관의 꼼꼼하고 생생한 이야기이다.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아사히신문 야마구치 스스무 편집장이 이범준 경향신문 기자에게 추천의 글을 보내와 이범준 기자가 직접 번역해 대한변협신문에 기고하였다.

▲ (좌)야마구치 스스무 편집장 (우)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 소수자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헌법이야기

2017년은 일본국헌법 시행 70주년이고 함께 출범한 최고재판소도 70세가 된다. 70년 역사 가운데 21세기 초반 10년은 최고재판소가 전에 없이 활발했던 시기다. 20세기 후반 사반세기에 소극적·억제적이라고 여겨지던 일본사법이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중요한 헌법판단을 내놓았고 법정결론과 다른 의견인 소수의견(독자의견)이 꽃을 피웠다. 이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바뀌는 일도 적지 않았다.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이즈미 도쿠지다. 최고재판소에 재직한 약 6년(2002년 11월~2009년 1월) 동안 36건의 독자의견(가운데 25건이 반대의견)을 썼다. 역대 최고재판소 재판관 가운데 손꼽히는 숫자다. 독자의견을 써온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변호사나 학자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 법관 출신 재판관은 다수의견에 가담하는 경향이 강했고 선례를 지키는 내용이었다. 재판관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치고 사법관료 최고위직에 올랐던 이즈미 도쿠지의 경력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소수의견은 의외였다.

이 책을 보면 이즈미 도쿠지는 소수의견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5장 ‘최고재판소를 뒤집은 소수의견’에 소개되는 독자의견의 배경에는 ‘재판이란 무엇인가’ ‘사법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저자는 ‘사법이 나설 차례’ ‘사법이 한 발 나아가야 할 때’로 두 가지를 꼽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과 자유권 옹호에 문제가 있거나, 민주주의시스템 특히 선거시스템이 뒤틀린 경우다.

재판소가 적극적으로 위헌심사 기능을 수행하려면 재판소의 판례, 법률전문가와 사회 전체의 토론이 충분히 쌓여야 하고 국민의 사법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실무적으로 재판관이 헌법문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재판관이 헌법문제에 전념 가능한 환경으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참조한 외국의 예가 한국 헌법재판소다. 일본에 헌법재판소를 신설하려면(현행 헌법 시행 이후 한 차례도 없던)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재판소법 개정만으로도 한국 헌법재판소와 같은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재판소가 본래의 역할을 해내기 위한 중요한 대전제가 있다. 재판소 전체에 재판 독립의 기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메이지헌법 시절 대심원 체제, 전후 최고재판소 출범과정을 자신의 손으로 엮어내고 이 사법독립의 역사를 책의 가장 앞인 제1장과 제2장에 두었다. 두장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재판관들과 재판에 대한 깊은 애정, 특히 사법독립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약속이 느껴진다. 메이지헌법 시절, 전쟁 당시, 일본국헌법 공포부터 최고재판소 초창기에 걸쳐 사법독립을 지키려 했던 재판관들을 소개했다. 70년 전 일본의 재판관들이 저자의 손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사법이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선거소송 등에서 입법부에 결정적인 ‘노’를 들이밀지 못하는 최고재판소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한국도 1987년 민주화 이전을 비롯해 사법독립이 위협받는 일이 많았듯이, 사법독립은 지금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하는 과제다.

이즈미 도쿠지는 세상에 던지는 소수의견이 토론을 활발하고 깊게 만들어 마침내 미래를 바꾼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재판소는 국제적인 논쟁도 버텨내는 인권판단, 국제수준에 걸맞는 헌법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현대라는 시간과 일본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 그의 깊은 통찰력은 세대와 국경에 관계없이 배울 만한 것이다. 한국의 독자의 손에도 이 책 ‘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를 들려주고 싶다.


야마구치 스스무 (山口 進)
일본 아사히신문 오피니언 편집장. 1966년 도쿄도 출생,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옴진리교 재판, 사법개혁, 최고재판소 등을 취재해왔다. 2008년 아사히 GLOBE 부편집장을 거쳤다. 공저로 ‘최고재의 암투-소수의견이 시대를 열다, 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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