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1학년 고전시가강독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교수님’과 ‘선생님’ 중에서 어떻게 호칭해야 올바르냐고 교수에게 물었다(이 친구는 나중에 국어학 박사가 되어 모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수는 호칭이 아니라 지칭이다. 교사를 앞에 두고 교사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수업에서는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자네들한테 선생이라는 존칭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하자, 선생은 설명을 계속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성균관과 관계가 있는데 학교 일에도 종종 간여했다. 성균관의 영향이 여전하던 1976년 국문학과 교수이던 도남 조윤제 박사가 돌아가셨다. 이후 학교 안에서 ‘도남 조윤제 선생’으로 시작하는 이름의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걸 보고 유림들이 찾아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 도남 따위에게 선생이란 말을 쓰는가. 우리 성균관에서 선생은 퇴계나 율곡이다. 도남이 공부를 했으니 묘비에는 학생이라 쓸 것이고, 이런 행사에 쓰자면 박사나 교수 정도가 맞는 것이다.”

나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라는 논픽션을 발표했다. 이 작품을 쓰려고 3년에 걸쳐 재일교포 변호사들을 취재했다. 410일 동안 도쿄와 오사카를 시작으로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일본 전국을 돌았다.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일본의 한 로펌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변호사를 만났다. 일본에서는 변호사를 선생으로 부른다. 변호사는 지칭이고 선생이 호칭이다. 정확히는 변호사는 공식적인 지칭이고, 선생은 공식적인 호칭이면서 일반적인 지칭이다.

이렇게 선생으로 불리는 직업이 일본에 네가지밖에 없다. 변호사 이외에 교사, 의사, 정치가다. 정치가를 두고는 선생이란 이름값을 하느냐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유가 있을 테다. 당장 변호사들은 사법연수소에서 검소함부터 교육받는다. 작은 사무실을 쓰고 승용차는 가급적 타지 말라고 한다. 변호사의 부유함은 지나친 수임료를 뜻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형편이 좋아져도 과도한 수임료를 받는다는 비난을 우려해 작은 사무실을 고집한다. 그래서 선생이라 불리는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를 선생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박 대통령이 “(이거) 최 선생님에게 컨펌했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비서관에게 보낸 모양이다. 박 대통령이 선생이라고 불러온 그 사람이, 사람들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비참하게 알아가고 있다. 이런 때 더욱 슬픈 일은 우리 모두가 선생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오랜만에 퇴계의 글을 찾아 읽는다. “벼슬을 얻어도 걱정, 잃어도 걱정하는 모습이 말씨나 표정에 드러나기까지 하니, 참으로 비루해 보였다.” 비루한 시절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