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 10월의 마지막 날 비선실세가 검찰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에게 던진 말이다. 죽을죄는 ‘죽어 마땅한 큰 죄’란 뜻이다.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 피의자도,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피의자들도, 심지어 “민중은 개·돼지”라고 발언한 공무원도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죽을죄를 지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진정 죽을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죽을죄란 표현 뒤에는 반드시 용서를 구한다는 말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죽을죄로 과장되게 말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심이 들게 하려는 화술에 불과한 것이다. 악어의 눈물까지 더하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통상 “죽을죄를 지었다”는 당사자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한 다음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선실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수사에서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말한 죽을죄는 무슨 잘못이라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비선실세가 인사에 간여하였고, 정책을 재단하였으며, 예산을 주물렀고,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한마디로 ‘국정농단’이란 것이다. 고사성어에서 유래한 농단(壟斷)은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이다. 국정농단은 국정을 좌지우지하여 권력과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의미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비선(秘線)이 실세로 호가호위하기 위해서는 계선(系線)의 적극적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은 불문가지이다.

계선의 최정점인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비호가 없으면 비선의 국정농단은 불가능하다. 결국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는 대통령이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비선실세가 제기한 승마대회 심판 판정 불만 민원에 대해 관련 국장이 비선실세가 원하는 대로 감사결과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인사 조치를 지시했다고 한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비선실세의 딸을 비호하는 발언을 하고 장관이 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보도도 있다. 그 누가 감히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언행을 일삼은, 깜냥이 안되는 비선실세가 음지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국민이 국격까지 들먹거리는 이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에 아들과 딸, 사위까지 포함시켰다 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개에 있다.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국가권력 행사도, 정보도 다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의 자녀도 국정에 관여하려면 양지의 공개된 계선에 들어가야 한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박탈감과 허탈감을 느끼고 있고, 자괴감이 유행어가 되었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바닥을 기고 있어 정상적인 국정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다.나라 망신에 분노한 국민은 급기야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것은 법치주의가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책임은 차치하고, 이 정부의 요직에 중용되어 법치주의 훼손을 방임한 공직자들은 죽을죄를 지은 심정으로 석고대죄해야 한다.

이제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법치의 실현에 앞장서 훼손된 법치주의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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