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미 연방 대법원 대법관이 있다. “맡은바 임무에 능력의 최대치를 쏟아 부어 잘해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남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올해 83세다. 유명한 오페라 애호가인 그가 지난 12일 워싱턴 D.C. 존 F 케네디 센터에서 막이 오른 도니체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에 공작부인 역으로 출연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전히 그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1873년 대법원은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이러 브래드웰의 변호사 활동을 금지한 일리노이주의 결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가정주부였던 그가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하자 연방대법원에 제소했다. 그의 등록 신청은 ‘여성은 본질적으로 가정에 속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기각됐었다.

1956년 긴즈버그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내가 속한 세대에선 여성이 법학을 공부한다는 게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1940년대에 성장한 대부분의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은 대학졸업장이 아닌 한 남자의 부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1993년 빌 클린턴 정부 때 연방 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됐다.

2013년 6월 25일 미 연방 대법원은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핵심 조항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셸비 카운티 대 홀더(Shelby County vs. Holder)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다수의견 낭독이 끝나자 긴즈버그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이어졌다. 그는 소수의견에서 “오늘날 투표권법 파괴에 앞장서는 자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오만이다. … 투표권법이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폐기하는 행위는 ‘이 정도 비에는 옷이 젖을 것 같지 않다’고 우산을 내동댕이치는 격”이라 했다. 이로써 그는 2012~2013년도 회기 동안 법정에서 다섯번이나 소수의견을 낭독함으로써 대법원 내 최다 소수의견 낭독 기록을 반세기 만에 갈아치웠다. 당시 24살이던 뉴욕대 로스쿨 재학생 셔나 크니즈닉이 투표권을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린 대법원 판결에 경악했다. 때마침 동기였던 앙쿠르 만다니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을 ‘노터리어스 R.B.G.’라고 장난스럽게 불렀던 게 기억났다. 셔나는 번뜩이는 재치로 RBG를 향한 존경을 담은 블로그를 만들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존경과 상상력이 만나 RBG를 향한 온갖 패러디가 춤을 췄다.

MSNBC에서 여성, 정치, 법조 담당 기자로 활동하며 RBG를 수차례 인터뷰했던 아이린 카먼이 셔나 크니즈닉과 만났다. 차별을 딛고 일어선 한 여성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작품이 바로 ‘노터리어스 RBG,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과 시대(정태영 옮김, 글항아리)’다. 이미 한국 사회에는 여성 대법관도 있고, 여성 헌법재판관도 있다. 여성 판사도 많고, 여성 변호사도 많다. 가장 바른 길이라면 법 스스로가 소수파의 평등과 권리와 자유에 대해 불 밝혀야 한다. 남녀 법조가 한 목소리로 소수파의 평등과 권리를 경배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소수파 법조인 스스로가 권리와 평등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질 필요도 있다. 소수파의 권리를 실현하는 일이 한편으론 로 비즈니스의 블루오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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